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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푸틴 7명 타깃 메드베데프 궁정 쿠데타 ?

중앙일보 2011.04.13 01:22 종합 12면 지면보기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트는 12일(한국시간) “이고리 세친(51)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세친은 러시아 부총리다. 실세 블라디미르 푸틴(59) 총리의 심복이기도 하다. 서방 언론들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6) 대통령이 “1세트를 먼저 차지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상대로 한 권력다툼에서 기세를 먼저 잡았다는 얘기다.


“부총리·장관이 국영기업 맡아선 안 돼 … CEO 자리 내놔라”

 푸틴은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멘토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 푸틴이다. 메드베데프가 정치적 스승을 겨냥해 궁정 쿠데타라도 시도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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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발단은 명령서 한 쪽이었다. 이달 2일 메드베데프는 “부총리나 장관이 국영기업이나 대기업 회장·최고경영자(CEO)·사장 자리를 맡아선 안 된다”며 “올 7월 1일까지 감시·감독 대상 기업의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명령했다.









푸틴 총리



 메드베데프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건 ‘경제적 이유’다. 그는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실제 러시아 주주들과 기업인들이 관료 자본주의에 반발했다. 러시아 소액주주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3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장관이 직접 경영하는 산하 국영기업을 상대로 경쟁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마음속엔 정치적 의도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그가 국영기업 경영진에서 물러나라고 지목한 인물은 거의 대부분 푸틴의 심복들이다. 세친을 비롯해 제1 부총리 겸 농업은행 회장인 빅토르 줍코프, 부총리 겸 세계 2위 다이아몬드기업 알로사 회장인 알렉세이 쿠드린 등 7명은 푸틴의 권력을 지탱해 주는 경제 쪽 기둥들이다.



 단 1명만이 예외다. 세르게이 시마트코 에너지 장관인데 그는 메드베데프 쪽 사람이다. 그는 핵 연료 수출 회사인 아톰스트로이엑스포르트 CEO를 맡고 있다. “그가 사심 없이 명령했음을 내세우기 위해 시마트코를 희생양 삼았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해석했다.



 처음엔 아무도 메드베데프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여전히 러시아 정치는 푸틴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영기업 이권에 맛들인 정치인과 관료들이 단물을 쉽게 포기할 리도 없었다. 그런데 세친이 물러났다. 예상치 못한 결과다. 뉴욕 타임스(NYT)는 “메드베데프가 성공하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을 대신해 집권당 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애초 푸틴은 세 번 연속 대통령직을 맡을 수 없도록 한 러시아 헌법 규정에 따라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맡기고 스스로 총리가 됐다. 내년 선거에 나서 대통령직을 되찾을 요량이었다. 이런 그에게 메드베데프가 경제논리를 앞세워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메드베데프의 ‘푸틴파 제거작업’이 끝나면 러시아 시장경제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료 자본가들이 물러나고 기업인과 주주들이 주역으로 떠오른다는 예측이다. 이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말한 ‘러시아 시장경제 3.0’이다. 버전 1.0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전성기였고 버전 2.0은 푸틴의 관료 자본주의 시대였다. 푸틴은 올리가르히 뇌물과 유착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심복들을 국영기업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푸틴이 정치적 제자인 메드베데프가 최후의 순간에 승리의 축배를 들도록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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