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진 ‘억압된 일탈’전

중앙일보 2011.04.13 00:36 종합 25면 지면보기



저 말은 초원을 기억할까





전시장 1층에서 처음 관객을 맞는 작품은 시커먼 말 그림이다. 제목이 ‘유목동물’이다. 한지에 수묵과 아크릴을 사용해 수묵과 서양화의 맛을 결합시켰다. 화폭을 가득 채운 검은 말은 막 도약을 하려는 태세다.



건너 편에는 설치작업이 있다. 공중에 매달린 9폭의 초대형 족자에는 말과 곰, 개와 새 등이 그려져 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하다. 한때는 유목했던, 야생의 흔적을 가진 동물들이다.



 과학문명 시대 현대인의 실존을 주제로, 한국화의 새로운 변용을 고민해온 허진(전남대 교수·49)씨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초대전 ‘억압된 일탈’을 열고 있다. 인간과 자연 문제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유목인간’ ‘유목동물’ 연작, 비인간화를 비판한 ‘익명인간’ 연작을 선보인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이종융합통물+유토피아’ ‘생태순환’ 등에서는 자연과 공생하는 삶에 대한 모색을 담았다.



 허씨는 한국화의 거두 남농(南農) 허건(1908~87)의 손자다. 이번 전시에 할아버지 애장품이었던 수석을 모티브로 활용하기도 했다. 남농은 생전에 10만 점이 넘는 수석을 수집했으며 대부분을 고향인 전남 목포시에 기증했다.



허씨는 “기증하고 남은 몇 점을, 실제 할아버지를 보듯이 갖고 있었다”며 동물 족자 설치 밑에 수석을 전시했다.



“수석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목포 할아버지 댁에서 바라보던 다도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작가는 안식년이던 지난 1년 꼬박 이 전시에 매달렸다. 24일까지. 02-737-7650.  



양성희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