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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어정쩡한 선도 투자은행 경쟁력 없다

중앙일보 2011.04.13 00:29 경제 8면 지면보기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과연 이번엔 출현할까. 최근 금융권 화두인 선도 투자은행(IB) 얘기다. 세간에선 누가 누구와 결합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앞뒤가 바뀌었다. 기준도 없이 후보 회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논의 순서가 잘못됐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에 필요한 투자은행이 갖춰야 할 특성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규모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한국의 선도 투자은행, 얼마나 커야 하나. 투자은행의 규모는 자기자본으로 따진다. 자산규모가 중요한 상업은행과 다르다. 비즈니스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험의 중개와 부담이 핵심 기능이니 위험을 견뎌낼 자기자본이 중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최소한 아시아시장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투자은행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과 중국이 경쟁자다.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2008년 초 일본 대형 증권사 규모는 한국 대형 증권사의 4배 정도였다. 이를 따라잡겠다는 것이 당시 목표였다. 목표는 원대했으되 현실은 초라하다. 노무라가 리먼을 인수하면서 격차가 오히려 10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중국은 어떤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슷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중국 대형 증권사 자기자본 규모는 우리 대형 증권사의 4배 수준이다. 물론 규모가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투자은행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미 상업은행에선 시가총액 세계 1위, 2위가 중국의 은행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 자기자본은 3조원을 밑돈다. 일본이나 중국과 아시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10조원 이상은 돼야 한다. 어정쩡한 규모의 투자은행이 하나 더 생기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안 나오느니만 못하다. 해외 시장에선 역할을 못하고 한국 시장에서만 경쟁을 격화시킬 뿐이다.



 선도 투자은행은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하나. 뿌리부터 철저히 투자은행이어야 한다. 현재 금융지주회사 계열의 금융투자회사는 투자은행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상업은행 문화가 지배적인 조직문화에선 투자은행이 기를 펼 수 없다. 축구선수는 축구 문화가 중심이 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몸싸움도 하고 과감한 태클도 하고. 야구문화에서 야구감독한테 지도 받으면 결코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나올 수 없다. 누가 낫다는 말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하려는 선도 투자은행은 DNA부터가 투자은행이어야 한다. 금융지주회사라면 상업은행이 아니라 투자은행이 중심이 된 금융지주회사에 속해야 한다. 상업은행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상업은행 기능이 금융지주사의 중심 기능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등장한 선도 투자은행엔 ‘금융투자회사’란 이름 대신 ‘투자은행’이란 이름을 허용해 주자. 금융투자회사는 어정쩡한 이름이다. 외국에 나가면 금융투자회사란 이름을 이해하는 외국 금융인은 하나도 없다. 해외에선 이해도 못하는 이름을 갖고 어떻게 해외시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선도 투자은행을 만들기 위한 판은 누가 짜야 하나. 원자력 설비와 해외자원개발 등 국가 전략을 위해 투자은행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주도권을 잡는 게 마땅하다. 시장에서 자발적 출현이 어렵다면 정부가 나서 물꼬를 터줘야 한다. 정부가 투자은행 기능을 대신할 순 없지만 번듯한 투자은행 출현은 주도할 수 있다. 그러면 시장에서 후속적인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산업의 경우가 그러했다.



 선도 투자은행이 갖춰야 할 조건이 정해졌다. 이제 비로소 결합 대상 후보를 논할 수 있다. 자본금 규모, DNA 특성, 해외에서의 역할 그리고 여기에 정부의 주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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