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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장실에 걸린 주가 그래프 ‘삼봉 패턴’ 보고 폭락할 줄 알았다

중앙일보 2011.04.13 00:20 경제 4면 지면보기
‘족집게’ ‘심도사’ ‘애널리스트계의 대부’….


국내 애널리스트 1호 심근섭

 우리나라 최초의 애널리스트로 불리는 심근섭(71·사진) 전 대우증권 전무를 부르는 말이다. 그의 날카로운 예측과 분석은 지금도 증권가에선 ‘전설’이다.



전병서·신성호·이종우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전·현직 리서치센터장들이 그에게 교육을 받았다. 자칭 타칭 ‘심근섭 학파’다. 한때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절반 이상이 심근섭 학파로 채워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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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애널리스트 인생은 1963년 증권거래소에 입사해 조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시작됐다. 주식 관련 해외 원서를 주문해 읽고, 외국 증권사 보고서를 탐독하며 실력을 길렀다. ‘이치마와리(利廻)’ 같은 일본말을 ‘배당수익률’이라는 우리말로 바꾸는 등 한글화 작업을 한 사람도 바로 심 전 전무다.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76년 대신증권 조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매주 월요일 투자자들은 그가 내놓는 ‘주보(週報)’를 기다렸다. 해외 증시·경제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은 네 쪽짜리 보고서였다. 그는 “당시 해외 경제를 분석해주는 매체가 없다 보니 주보가 일종의 주간지 역할을 했다”며 “재무부 관료들까지 챙겨 읽고, 경쟁사는 주보가 나올 때까지 회의를 미루는 등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78년 대우증권 이사로 스카우트된 이후에는 중동 건설주의 급락을 맞혔고, 80년 2차 오일 쇼크 때는 “원유가격은 배럴당 40달러에서 멈출 것”이라고 예측해 적중했다. 5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대우경제연구소 상무로 돌아온 88년, 그는 한국형 리서치센터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는 연구할 분야를 지정하고, 담당 업종을 분화하면서 전문화를 추구했다.



 그는 후배들을 엄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싹수 있는 후배에게는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1대1로 가르치며 자신의 분석기법과 노하우를 가르쳤다. 이른바 애널리스트의 도제식 교육이 그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우리투자증권 신성호 리서치본부장 등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애널리스트들은 지금도 ‘스승의 날’에 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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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족집게’로 불린 것도 이 무렵이다. 89년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넘는 강세장이 연출될 때 그는 “주가에 거품이 끼어 30~40% 정도 하락할 것”이라는 폭탄 선언을 한다. 투자자의 항의가 빗발쳤고, 지점에 뿌렸던 보고서가 회수됐다. 하지만 1년 뒤 지수는 정말로 500선까지 내려갔다. 그는 “‘죽여버리겠다’는 투자자들 때문에 한동안 집에도 못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92년, 이번엔 지수가 500선에 머무를 무렵 “1000선을 다시 돌파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주식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그의 말대로 주가는 오르기 시작해 1100선을 돌파한다.



 하지만 95년에는 전망이 크게 빗나갔고, 결국 옷을 벗는다. 그는 “몇 년 안에 지수가 2000~3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했지만 지수는 반대로 내림세로 기울었다. 회사에선 97년 자회사로 ‘문책성’ 발령을 냈다.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심 전 전무는 “우리 증시가 선진국 증시로 발돋움한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며 “지금도 방향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99년 코리아뮤추얼이라는 신생 회사로 잠시 컴백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이후 증권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경제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그의 애널리스트 ‘본색’은 감출 수 없는 법. 그는 “2008년 우연찮게 은행 지점장실을 방문했는데 벽에 주요국 주가 그래프가 걸려 있었다”며 “딱 보니 ‘삼봉’ 패턴이 보이기에 한번 떨어지겠구나 했는데 금융위기가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장세를 ‘불안한 상승장’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장세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여러 번 답변을 사양했다. 은퇴한 사람이 전망을 내는 게 적절치 않을뿐더러 예측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막대한 돈을 풀어 금융위기를 넘긴 것이기 때문에 근본 처방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미국의 재정적자와 부채 부담이 가시화하면 증시가 다시 한번 폭락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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