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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읽기] 잡을 게 어디 기름값뿐인가

중앙일보 2011.04.13 00:16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부문 선임기자




기름값을 두고 온 나라가 법석이다. 국제유가가 다락같이 오르면서 그 파장이 시차를 두고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예상대로 정말 국내 유가가 오르자 참으로 ‘묘한’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이후 정부가 갑자기 국내 기름값 잡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그 후 묘하게도 국내 정유사들이 줄줄이 ‘자발적으로’ 기름값을 내리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기름값이 기대한 만큼 떨어지지 않자 이번에는 국내 기름 판매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 유류세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국내유가도 오르는 것이 당연한데도 정부는 유가 인하가 흡사 최우선 국정과제라도 되는 양 목을 매는 모습이다. 정부가 앞장서 기름값 인하를 외치니 그동안 조용히 참아오던 사람들마저 이제는 기름값을 낮추는 일을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책무처럼 여기게 됐다.



 정부가 다른 것을 제쳐두고 유독 기름값 인하에 초점을 맞춘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나는 국내물가에서 기름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기름값을 잡아야 전체 물가가 뛰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치솟는 물가를 잡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정부로서는 나름대로 해볼 만한 방법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기름값이 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는 기름값 인하가 약효가 가장 클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또한 그동안 정부의 친서민 행보에 비추어 그 충정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의도가 좋다고 해서 수단이 항상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름값이 떨어져 물가도 잡고 서민의 주름살도 펼 수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런데 기름값을 억지로 낮추려다 보니 사달이 벌어졌다. 국내 기름값이 오른 이유는 누가 봐도 원가(국제유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제유가를 낮출 수 없다면, 국내유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정유사들을 쥐어짜든지, 아니면 기름에 붙는 세금을 깎아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유사의 ‘자발적인’ 가격인하든, 정부의 유류세 인하든 정작 기름값이 오르는 근본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더 오르면 국내유가 인하 효과는 금방 상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미봉책이 갖는 한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위적인 유가인하가 시장의 가격기능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이른바 녹색성장 정책과도 상치된다는 점이다. 시장의 가격기능이란 값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값이 떨어지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유가가 올랐는데도 국내유가가 오르지 않으면 국내수요가 줄어들 리가 없다.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아무리 외쳐도 기름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다. 또 기름값이 오르면 이를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을 찾을 유인이 커지기 마련인데 억지로 기름값을 누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신재생 대체에너지의 개발이야말로 정부가 역점을 두어온 녹색성장 정책의 핵심과제 중 하나가 아니던가. 인위적인 국내유가 인하가 녹색성장을 가로막는 형국이다.



 서민의 물가부담이 걱정이라면 전체 기름값을 낮추기보다는 유가인상으로 타격이 큰 계층이나 집단에 대해 직접 보조금을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서민을 위한답시고 정부가 섣불리 가격에 개입하다 보면 그에 따른 행정비용이 큰 것은 물론이고 시장의 가격기능 상실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서민이 힘들어하는 게 어디 기름값뿐이겠는가. 배추값과 대중교통비, 자장면값이 오르면 또 어쩔 것인가. 정부가 가격이 오르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값을 낮추도록 팔을 비틀 작정인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정부가 국민생활의 모든 부문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다를 게 없어진다. 정히 물가가 걱정이라면 차라리 중국처럼 물가지수의 구성품목을 조정하거나 가중치를 바꿔 통계를 조작하는 편이 가격을 조작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그런데 그런 중국도 최근 국내 기름값을 5%나 한꺼번에 올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에 앞서 “물가문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 했다. 공급부족이나 원가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코스트 푸시 인플레)에 단기적인 처방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 오름세 심리(인플레 기대심리)를 막기 위해 억지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까지 탓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물가상승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러나 쇼는 어디까지나 쇼로 그쳐야 한다. 물가를 잡는다고 경제까지 잡을 순 없지 않은가.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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