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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고통도 교육의 일부다

중앙일보 2011.04.13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78)는 인간을 “강제로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누구나 자유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평등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강제로 평등하게’ 만들어진다. 교육의 경우가 그렇다. 국민은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국어·영어·수학·과학 같은 과목을 강제로 배워야 한다.



 교육과 평등의 만남은 비효율을 잉태한다. 직업상 수학·과학을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분의 1가량이지만 누구나 배워야 한다. 국어만 잘해도 되는 직업이 많고 이민을 가서도 영어를 쓰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영어는 누구나 배워야 한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냐 집단 차원이냐에 따라 비효율의 의미는 다르다. 교육받는 국민 중 누가 과학에 소질이 있어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누가 영어를 잘해 나라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낼지 알 수 없다. 국가 입장에서 국민 모두에게 과학·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평등을 구현하는 일임과 동시에 불확실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학 교육은 상당부분 훌륭한 학자를 키우는 데 맞춰져 있다. 박사·교수가 되는 졸업생은 소수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취업하거나 자영업자가 된다. 그러나 모교를 빛낼 미래의 지도자를 교육하기 위해 대학은 강제성·비효율성·불확실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교육을 하게 된다.



 특히 대학 교육에서 평가 방법은 강제성·비효율성·불확실성이 합동 공연하는 무대다. 우선 상대평가건 절대평가건 모든 평가는 강제적이다. 교육계의 오랜 고민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교육 목표·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교육철학과 교육이론으로 시험을 설계해도 평가 내용·수단의 비효율성 문제는 남는다.



 테스팅 방법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를 한다고 해서 보다 많은 학생이 A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의 기준은 더욱 인위적이다. A학점의 기준을 A를 받는 MIT 재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으로 삼는다면 A를 받는 학생이 더 줄어들 수도 있다.



 대학과 국제사회가 만나면 강제성·비효율성·불확실성의 문제는 더욱 격화된다. 우리 경쟁국의 학생들이 엄청난 학습량을 소화하기 때문에 강제성이 불가피하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외의 대표적인 대학들도 교육의 비효율성과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경쟁을 강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정된 진리는 아니다. 거대한 물음표가 붙어 있는 문제다. 미국·유럽·중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모든 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과학과 기술과 혁신을 추구한다.



물론 과학기술의 혁신은 경쟁을 지향하는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대학 내부의 경쟁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문이 있는 것이다.



 대학이 평가 방법을 손질하고, 튜터 제도, 상담센터 운영을 활성화하고 학생들이 영어수업과 우리말 수업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은 필요하다. 대학은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 미국의 대학들도 다방면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ABC 학점제의 ‘경쟁 본능 유발 효과’를 의심해 학점제를 아예 폐지하는 인문대학(liberal arts college)이 많다. 하버드·스탠퍼드·예일 등의 의학·법학·경영학 대학원들도 학점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졸업생들의 취업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학점이 사회인으로서 성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오랜 연구 결과 때문이다.



 우리나라나 선진국 기업은 전문성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 스킬(hard skills)보다는 협력·소통·창의적 문제해결 능력과 같은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을 요구한다. 강제성·비효율성·불확실성이 낳는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얻는 소프트 스킬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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