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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거협

중앙일보 2011.04.13 00:02 종합 35면 지면보기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는 백제시대 ‘벽골제’다. 호남평야의 중심 김제에 있다. 김제란 지명은 ‘쇠 금(金)’에 ‘제방 제(提)’로 이뤄졌다. 천수답이 대부분인 옛날, 물을 가둔 제방은 그야말로 ‘금값’이었을까. 그런데 김제는 사금(砂金)으로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금구면은 ‘엘 도라도(El Dorado)’다. 지명이 ‘금 캐는 도랑’이란 뜻의 ‘금구(金溝)’ 아닌가. 일제시대부터 채광업자들이 엄청나게 흙을 파 저절로 써레질이 됐다고 할 정도다.



 금구가 최근 ‘돈 밭’으로 화제다. 마늘 밭에서 5만원권을 담은 김치통 수십 개가 발견됐다. 액수가 무려 100억원대다. 그야말로 ‘금 캐는 돈 밭’이다. 인터넷 도박장을 개설해 모은 돈이라는데, 얽히고설킨 탐욕이 화(禍)를 불렀다.



 장자(莊子)는 ‘(돈)상자를 연다’는 뜻의 ‘거협(胠篋)’에서 ‘세상의 지혜’를 논한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쓰는 것이 되레 도둑을 돕는다는 역설이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짝을 여는 도둑에 대비하려 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거도(巨盜)는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주머니를 메고 달아나며 오로지 끈과 자물쇠가 약하여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의 지혜’라는 게 큰 도둑을 위해 재물을 잘 꾸려두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바로 금구의 ‘돈 밭’ 주인 이야기 아닌가. 애써 꾀를 내 김치통에 담은 것이 결과적으로 누군가 가져가기 쉽도록 도운 셈이다. 도둑은 아니지만 경찰로선 운반하기에, 헤아리기에,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무릇 일이란 치밀하면서도 비밀리에 도모함으로써 성공한다고 했다. ‘사이밀성(事以密成)’이다.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 없다. 하늘과 땅, 그리고 너와 내가 아는 것이다. 또 일은 말이 새어나가 실패한다고 했다. ‘언이설패(言以泄敗)’다. 밤말은 쥐, 낮말은 새가 듣는다. 이번에도 자기의 좀도둑질을 감추려 누명을 씌우고 거액의 돈궤를 누설했다가 발각됐다.



 물론 장자의 ‘거협’은 나라를 훔치는 정치를 통박하며 ‘무위(無爲)’를 강조하는 얘기다. 자연의 본성을 거스른 ‘인의(仁義)’ 역시 세상에 해를 끼칠 뿐이란 주장이다. 그런데 도척(盜蹠)은 “인(仁)이란 훔친 물건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 의(義)는 훔친 후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도둑의 도(道)’인데, 과연 작금에 도척을 손가락질할 수 있는 지도층이 얼마나 될까.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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