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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탐사] 4·19세대와 이승만의 화해

중앙일보 2011.04.13 00:01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편집인




이승만은 서사시(敍事詩)다. 장엄하고 처절한 삶이다. 영광과 오욕의 갈림은 극명하다. 그의 구십 평생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압축이다. 곡절은 긴박하고 반전은 극적인 드라마다. 대다수 한국인은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알아도 일그러진 부분이다.



 말년의 과오 때문이다. 독재와 부정선거다. 4·19 혁명은 그를 퇴장시켰다. 그 오점이 그에 대한 평판과 선입관으로 거세게 자리했다. 뒤틀린 이미지는 그의 생애를 추적하려는 지적 호기심을 떨어뜨렸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흥미를 감퇴시켰다.



 이승만의 과(過)는 분명하다. 공(功)은 찬연하다. 그는 건국 대통령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나라의 비전과 틀을 잡았다. 그 선택은 위대했다. 북쪽 노선으로 갔으면 집단적 배고픔과 세습 독재에 허덕였을 것이다. 6·25전쟁의 정리를 놓고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과 충돌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거센 투쟁의 성취다. 미국은 그를 쿠데타로 제거하려 했다. 동맹조약의 군사·경제 지원은 국가 재건의 기반이었다.



 4월은 이승만에게 잔인하다. 그의 거대한 삶은 상처투성이로 헝클어진다. 50여 년이 지났다. 4·19 세대는 나이 칠십을 넘겼다. 그들의 이승만 평가와 시각은 어떤 모습일까. 1960년 4·19 전날 고려대 시위가 있었다. 그날 밤 학생들은 정치 깡패들한테 기습을 당했다. 그 유혈은 다음 날 모든 대학의 궐기로 이어졌다. 박찬세(당시 고려대 4년)씨는 압도적 중심인물이었다. 4·18 선언문은 그의 작품이다.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이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명문이다. 그 시대 대학의 감성, 저항의 대의를 명쾌하게 표출했다. 그와 대화를 나눴다.



 -4·19가 다가오면 이승만은 왜소해진다. 과오가 집중 부각된다.



 “불공정하다. 이승만의 공과를 균형 있게 접근해야 한다. 중국 현대사를 봐라.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문화혁명 시절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에게 두 번 숙청됐다. 하지만 덩은 마오의 공적을 먼저 인정했다. 온고지신 지혜다. 이승만은 현대사의 출발점이다. 그를 제대로 평가해야 현대사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완성된다. 말년의 독재와 실패는 그의 생애 중 일부다.”



 -4·19와 이승만은 대척점에서 존재한다. 지 금의 젊은 세대가 이승만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이승만은 4월 혁명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의 하야 요구를 받아들였다. 시대의 흐름을 수용했다. 시위 부상자들의 병실을 찾았다. ‘불의(不義)에 분노하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다’라고 그들을 위문했다. 지금 중동 이슬람의 시민 시위 과정과 비교해봐라. 50여 년 전 이승만은 달랐다.”



 저항은 이승만의 젊은 시절 장면이다. 잘생긴 얼굴에다 개화파로의 지적 단련,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개와 좌절,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 규탄, 종신형 선고, 고종의 대미 밀사, 그리고 독립투쟁, 일본이 그의 목에 건 30만 달러의 현상금, 시체를 넣은 관 틈에 숨어 상하이로 밀항-. 치열한 삶이다. 거기에 얽힌 긴박한 드라마는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4·19 혁명은 민주화의 상징이다. 위대한 성취다. 그 업적을 기릴수록 이승만은 초라해졌다. 그 상황을 교묘히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 3류 종북 좌파들이다. 그들은 해방공간의 역사·이념의 대결을 김일성 승리로 귀결시킨다.



이를 위해 이승만에 대한 경멸감을 주입한다. 인물에 대한 자학적(自虐的) 사고(思考) 습관을 배양한다. 그들은 이승만의 친일파 기용 논란을 키우면서 독도의 평화선 선포 결단을 축소한다. 이승만과 김구 사이도 이간질한다. 그 세력은 4월 혁명을 이승만 폄하에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4·19 주역들은 이승만을 역사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4·19 세대가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독점할 수 없다. 이승만 생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차단해선 안 된다. 다수의 젊은 세대는 균형감각을 가지려 한다.



이기택(민주평통 수석부의장)씨는 “4·19 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북한의 민주화”라고 역설한다. 그는 4·19의 간판이다. 그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도 이승만의 성취와 공존해야 한다. 4·19와 이승만의 화해는 현대사의 성숙이다. 일류 국가로 가기 위한 역사 인식의 혁신이다.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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