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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카이스트 총장 퇴진 논쟁

중앙일보 2011.04.12 00:15 종합 33면 지면보기
학생들의 잇따른 희생으로 KAIST 개혁이 요구되는 가운데 서남표 총장의 퇴진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서 총장이 추진해온 징벌적 등록금제 등이 학생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었다는 이유다.



[찬성] 퇴진이 해결의 출발점









송태호
KAIST 교수 기계공학과




서남표 총장은 가히 고래 심줄이다. 서 총장은 징벌적 등록금제와 영어강의로 인해 쌓여온 문제가 한둘이 아님에도 ‘치적’으로 내세우며 미동도 않았다. 마침내 학생들이 목숨을 던지는 사태가 이어지자 서 총장은 겨우 몇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봉책으로 생색만 내는 듯하다. 진정으로 서 총장이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아까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서 총장이 과연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서 총장이 스스로의 잘못을 수정할 자정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연임(連任) 당시 “앞으로 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선으로 되돌아갔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뤄볼 때 그나마 미흡한 이번 개선 조치도 앞으로 여론이 가라앉고 나면 다시 없던 일로 돌리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학교에서 학생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교육기관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 대가(代價)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서 총장은 좋은 대학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좋은 대학이 무엇인가. 좋은 교육을 시켜서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고 좋은 연구를 해서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이렇듯 학생들의 목숨을 담보해야만 하는가.



 서 총장의 교육철학이 무엇인지는 내부자인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 여태껏 말한 적도 없다. 아마도 입버릇처럼 내뱉는 ‘Is it good for KAIST?’라는 단문(單文)에서 더 나아간 것은 없는 것 같다. 악착같이 싸우며 살아온 미국생활의 결과로 남은 순위주의가 그 전부로 보인다. 무조건 1등. 그는 학생과 교수를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단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구성원들에 대한 격려와 찬사에는 매우 인색하다. 채찍만 남은 네거티브 리더십이다.



 불행히도 적지 않은 여론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왔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KAIST이기에 우리의 운명이 정부 정책의 실험 대상인 것은 피치 못할 일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부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외부의 지원만 있으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친 리더십은 더 이상 곤란하다.



 같은 대학현장에서 본 서 총장의 모습은 외부인들이 멀리서 보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가 벌인 일들의 결과로 학사·재정·인사 등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것들은 지난해 연임 시점에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여러 차례 지적됐다. 그런 문제들이 풀리지 않고 쌓여 오늘의 사태가 온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문제가 어떻게 터져 나올지 조마조마하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서 총장이 스스로의 문제를 인정하고 고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그가 “앞으로 수정하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믿기 힘들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서 총장으로 인해 대학이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지 우려된다.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를 만들고 쌓아온 서 총장이 사퇴하는 길이 해결의 출발점이다. 서 총장이 명예롭게 물러나기는 이미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총장 개인의 명예를 논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 KAIST가 감수할 수 있는 희생의 한계는 이미 넘었다.



송태호 KAIST 교수 기계공학과



[반대] 총장 개인 문제 아니다









김용세
대전대 교수 법학




최고의 과학영재들이 연쇄적으로 목숨을 끊은 탓에 그 원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 대학 안팎의 많은 이가 경쟁 위주의 학사 운영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 제도로 인해 학생들의 학업의욕이 떨어졌고, KAIST는 학점 경쟁에 의해 맞춤형 인재를 찍어 내는 영재공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KAIST만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경쟁 중심 학사 운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므로 서남표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는 식의 일견 명쾌해 보이지만 다분히 선동적인 분석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비난은 쉽다. 비난하는 사람은 그저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북돋우는 학교, 성적 경쟁이 없어도 모든 학생이 최선을 다하는 학풍, 구성원 모두가 화합해 스트레스 없이 세계 최고의 학문 수준을 유지하는 유토피아 같은 학교를 만들라고 질타하면 그만이다. 이 모순되는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할 방법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지 고민하는 것은 남의 일이라는 듯 외면해 버린다.



 그러나 군대에서 자살하는 사병이 많다는 이유로 훈련을 놀이로 대체할 수는 없다. 경쟁이 없는 진보란 있을 수 없다. 재학생 자살은 KAIST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명 내외의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많은 학교장 중에서 서 총장에게만 사퇴를 요구하고 그의 교육철학을 매도하려면 서 총장의 정책과 재학생 자살의 인과관계를 보다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모순의 일부다. 인구가 늘고 산업기술이 발달할수록 소외와 경쟁이 심화되고 경쟁에서 뒤처진 자의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은 심각해져 간다. 그리하여 건강이나 안전, 그 밖의 본능적 욕구에 대한 위협에 직면하고도 그것을 극복할 적절한 방법이나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압도적인 스트레스의 결과로 자살과 같은 부적응의 행동양식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에 만연한 위기상황에 대한 해법 찾기라는 관점에서 청소년 자살의 원인과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중 정신적 상처를 입은 사람에 대해 ‘전문적 위기 개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됐다. 연방의회는 1946년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교육 및 지역 정신건강센터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정신건강법’을 제정했다. 63년에는 ‘지역 정신건강센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이나 약물 남용자 등을 보호·지원할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각급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학생과 주민의 정신건강에 관한 상담 및 치료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지 자살 방지뿐만 아니라 여중생 강간살해범 김수철 사건처럼 정신적 결함으로 인한 범죄 또는 사회 불만이나 부적응으로 인한 우발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위기가 반드시 부정적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위험을 내포하지만 동시에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서적 직관에 의한 여론몰이보다는 KAIST의 존재 이유와 학생 복지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위로하며 지켜보는 편이 올바른 방향이다.



김용세 대전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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