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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티파니 상자 속의 과학’

중앙일보 2011.04.12 00:13 경제 8면 지면보기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이 여러 강연에서 자신의 성공전략을 표현하며 쓴 말이다. 파란색 상자는 티파니의 상징이다. 세계 최고 보석회사 중 하나인 티파니 제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티파니 경쟁력의 핵심은 상자가 아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보석이다. 현대캐피탈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디자인, 광고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핵심은 ‘금융공학’이다. 고객정보를 누구보다 철저히 보호·관리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고객정보를 해킹당한 정 사장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수치스럽다”고 한 이유다. “고객 정보에 최선을 다하는 회사라고 생각했고, 평소에도 이런 일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질의응답 중 그는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얼마 전 사적인 자리에서 도쿄전력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고 한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는데 CEO라는 사람이 잠적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질책이었다. 그때는 현대캐피탈에 이런 위기가 닥칠 줄은 상상도 못하고 한 얘기일 것이다. 물론 그는 시미즈 사장처럼 도망가지 않았다. “책임질 일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해킹 사실을 안 직후 수사를 요청했고, 하루 반나절 만에 이 사실을 공개했다. 유럽 출장 도중 급거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고 고객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해킹 사실을 안 뒤 72시간 동안 단 30분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캐피탈 내부에서는 해킹 사실 공개와 기자회견 개최를 두고 이견도 있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책임이 회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정 사장은 “가급적 숨기지 말고 공개하자”고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정 사장은 위기에 정공법으로 맞섰다. 방향은 맞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모른다. 해킹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난다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 또 해킹을 당하고도 두 달 가까이 몰랐던 게 무엇 때문인지, 어떻게 재발을 막을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놔야 한다. 갈 길이 아직 멀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정 사장이 ‘티파니 상자 속 과학’을 다시 자랑스레 말할 수 있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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