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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1) 갤러리를 ‘후원자’라 부르는 오거스타의 의리

중앙일보 2011.04.08 00:16 경제 18면 지면보기
“마스터스 갤러리의 특성은….”



프레스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그린 재킷을 입은 신사(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의 회원)에게 시험 삼아 이렇게 말해 봤다. 예상대로 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는 “마스터스는 갤러리가 없고 패트런만 있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마스터스를 개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관객을 ‘갤러리’라 부르면 질색을 한다. 후원자라는 뜻의 패트런(patron)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의 표정 변화가 재미있어 한 번 더 갤러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처음 가 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그만뒀다.



클럽이 갤러리를 패트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와 월스트리트의 주식 중개인인 클리퍼드 로버츠가 1930년대 초 이 골프장을 만들 때 마침 불어닥친 대공황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두 창립자는 미국 전역의 골프 애호가들에게 회원이 되라는 권유 편지를 보냈지만 답은 거의 오지 않았다. 자금이 모자라 몇 차례 포기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어렵사리 골프장을 완공하기는 했지만 대회 개최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티켓 판매가 잘 안 됐다. 경제도 좋지 않았고 신설 대회라 대중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마스터스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팬들은 티켓 전쟁을 치른다. 현재 미국의 골퍼들은 마스터스 대회를 구경하는 것이 퍼블릭 코스 1년 라운드권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습라운드 관람 티켓도 추첨을 통해 팔아야 할 정도다.



만약 오거스타 내셔널이 티켓 가격을 비싸게 팔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현재의 가격(78달러)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다. 그러나 마스터스는 브리티시 오픈이나 US오픈 등 다른 대회보다 싼 가격에 티켓을 판다. 또 어려울 때 대회 티켓을 사서 패트런이 된 사람에게만 본 대회 티켓 구매 권리를 준다. 패트런은 사정상 경기를 볼 여유가 되지 않으면 티켓을 반납하거나 티켓 값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액면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파는 사람도 있다.



클럽은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는다. 패트런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클럽은 어려울 때 티켓을 구매해 준 팬들을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의 회원인 빌리 모리스는 “대회를 후원해 준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티켓 가격만이 아니다. 클럽 안에서의 음식은 놀랄 만큼 싸다. 골프장 안에서 커피와 블루베리 머핀, 과일은 1달러다. 미국 시골 동네의 허름한 레스토랑보다 싼 것 같다. 가장 푸짐한 클럽 샌드위치는 2달러50센트다. 맥주는 커다란 컵에 가득 채워 3달러다.



만약 같은 음식을 골프장에 인접한 오거스타 시내의 식당에서 먹었다면 가격은 열 배 이상이었을 것이다. 마스터스 특수를 노리는 오거스타 시의 레스토랑에서는 대회 기간 중 평소보다 5배의 가격을 부른다. 그러나 클럽은 “우리를 후원해준 패트런이 좋은 음식을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기념품도 다른 대회보다 훨씬 싸다. 마스터스는 로고가 달린 티셔츠 등 기념품을 일반 퍼블릭 골프장의 프로숍 정도의 가격에 판다. 상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감성적이다. 기자는 신선한 1달러50센트짜리 에그 샌드위치와 진한 맥주를 마시면서 오거스타 내셔널이 갤러리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조금 성공하고 나면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잊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오거스타는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를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의리, 명예가 골프의 정신이며 사람들이 마스터스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오거스타는 기념품 매출이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훨씬 많은 4000만 달러 정도다. 패트런은 기념품을 구매해 대회에 도움이 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취재진에게도 정성을 다한다. 클럽은 초창기 플로리다 야구 스프링 트레이닝을 취재하고 돌아가는 기자들을 초청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디어의 도움도 잘 알고 있다. 참고로 다른 대회 기자실에는 맥주가 없는데 마스터스 기자실에는 맥주가 세 종류나 있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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