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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결혼식 “그대라서 행복 합니다”

중앙일보 2011.03.25 03:27 1면 지면보기
세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잃고 난 후 한 번도 온전하게 걸어보지 못한 이순자(58)씨. 그런 그녀 곁에서 30년째 묵묵히 한쪽 다리 역할을 해준 남편 김춘석(64)씨. 가정형편조차 어려워 결혼식을 미뤄왔던 이들 부부가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결혼식을 하게 됐다. 천안지체장애인협회 도움으로 내달 8일 합동결혼식을 올리게 된 부부를 만났다.


김춘석·이순자 부부의 사랑이야기







내달 8일 30년만에 결혼식을 치르는 김춘석(왼쪽)·이순자 부부가 밝은 표정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가난한 시골청년 그녀를 만나다



춘석씨는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더구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학교공부는 먼 나라 얘기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사를 배웠다.



 한창 성장할 나이에 일하는 것도 모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해 항상 배를 움켜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밝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간 ‘희망’ 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부인 순자씨를 만났고, 장애는 있지만 구김살 없는 모습에 반해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다리를 절뚝거리는 걸 알았지만 문제될 건 없었어요. 비록 다리는 불편했지만 마음은 따뜻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엄마 난 왜 남들하고 달라?”



순자씨는 똑바로 걸어본 적이 없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기 전에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아이였다고 하지만 그에게 세 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 “어머니 원망을 많이 했죠. 남들과 다른 내 모습이 모두 어머니 탓이라 여겼으니까요.”



 그 역시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그를 공부에서 멀어지게 만든 건 아이들의 ‘놀림’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그를 놀려댈 때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뿐 이었다.



 더 이상의 진학은 무의미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계속 상처를 받을 바엔 차라리 두 동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자는 생각에 14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나이 28살 때 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고 춘석씨를 만났다.



 순박하고 더없이 착해 보이는 그가 자신의 한쪽다리가 돼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이유 없이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어요. 선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남편과 함께라면 어려운 세상도 이겨나갈 자신이 있었죠.”



신혼, 그리고 보따리 이사



그렇게 둘은 처음 만난 지 일주일 만에 미래를 함께하기로 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신혼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시댁과 친정에서 받은 신혼 예물이라곤 각자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 돈짜리 금반지뿐.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기에 거처를 마련하기 조차 힘들었다.



 “우리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더 좋은 반지를 결혼식장에서 서로에게 끼워줍시다.” 눈물로 다짐을 하고 서로의 반지를 팔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10만원 남짓. 아무리 80년대 초라고 하지만, 그 돈으로는 천안 지역에 사글세 방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겨우 외곽지역에 방 한 칸짜리를 얻어 몇 개월을 살긴 했지만 일용직으로 일하던 춘석씨의 수입이 일정치 않다 보니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할 수없이 수년 동안 천안과 경기지역 등을 오가며 보따리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렇게 결혼식과 반지의 약속은 잊혀 갔다.



오래된 약속, 결실을 맺다



순자씨는 지체 장애 2급이지만 남편이 건강하다는 이유로 이제까지 장애인 지원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술이나 담배조차 할 줄 모르는 남편 김씨는 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김씨의 착한 마음을 알고 품삯을 주지 않고 미루는 못된 사업주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김씨 부부는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살았다.



 세월이 지나 두 남매의 부모가 된 이들은 “어떻게든 가난은 물려주지 말자”며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점점 늘어가는 보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저축’이라는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두 남매 모두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고 결혼시켜 살림을 내줬다. 부부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며 함께 웃었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볼 때면 그들의 옛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 30년 전 서로에게 언젠가 결혼식장에서 반지를 끼워주자는 약속은 결혼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그러던 지난해 어느 날. 같이 길을 걷던 부부는 천안시 성정동에 천안지체장애인협회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 후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 보다 더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장애인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했다.



 이들을 지켜보던 유제원 천안시지체장애인협회 회장은 매년 충남지체장애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합동결혼식에 그들을 추천했다. “30년만의 약속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하며…” 김씨 부부는 유 회장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로써 오래 된 약속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김씨 부부는 “새 출발 한다는 마음으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식을 마련해준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며 행복해 했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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