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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현장 외면해 실패한 결합개발

중앙일보 2011.03.25 01:03 종합 22면 지면보기






박태희
사회부문 기자




안타깝게도 남산의 다람쥐는 한강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 2009년 6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남산 자락에 들어선 해방촌(용산동2가)에 녹지를 조성해 남산~용산공원~한강을 잇는 ‘남산 그린웨이’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그때 “남산의 다람쥐가 용산공원을 통해 한강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시는 나름대로 묘안도 냈다. 녹지길이 들어서는 땅을 시에 내놓는 해방촌 주민을 위해 인근 후암동 아파트의 용적률과 층수를 높여 이들에게 입주권을 주는 ‘결합개발’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시가 녹지길을 만들기 위해 땅을 사들일 필요가 없으니 예산도 아끼고 친환경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합개발은 해방촌과 후암동 주민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설명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 결국 용산구는 24일 “해방촌 지역의 의견이 모이지 않아 후암동을 먼저 개발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다만 해방촌 주민 가운데 녹지 개발 찬성자에겐 후암동 아파트 입주권을 주고, 찬성비율에 따라 후암동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층수를 높여주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해방촌 주민의 일부라도 동의를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녹지길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장에선 “결합개발은 이걸로 사실상 끝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방촌 주민 일부가 녹지 조성에 찬성한다고 해도 녹지길을 만들 정도가 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해방촌 L부동산 이춘길(56)씨는 “월세가 유일한 수입인 건물주들, 싼 임대료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개발을 극력 반대했다”고 말했다.



후암동에선 해방촌을 제외한 독자 개발의 길이 열렸다고 환영하고 있다. 심한섭(73) 후암동재건축추진위원장은 “후암동은 결합개발에 발이 묶여 증·개축도 못하는 곳이 됐었는데 독자 개발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공무원은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곳 주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감안하지 못했다”며 “단순히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생각만으론 복잡한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오 시장은 2년 반 전 거창한 계획을 내놨지만 그동안 한 번도 현장을 찾아 주민을 설득한 적은 없다고 한다. ‘주민’보다 ‘다람쥐’를 앞세웠던 구상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박태희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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