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엘리자베스 테일러 1932 ~ 2011] 한 시대가 끝났다

중앙일보 2011.03.25 00:28 종합 24면 지면보기



1950 ~ 60년대 ‘미의 카리스마’
그 미모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1949년 8월 22일자 타임 표지













“‘한 시대가 끝났다’고 일컬어지는 죽음은 드물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경우는 그렇다. 그녀만큼 연기와 미모, 사생활, 건강 문제 등 모든 면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은 여배우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분야를 만든 스타였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로저 에버트는 23일 자신의 블로그(rogerebert.com)에 이렇게 추모의 글을 올렸다. 뉴욕 타임스(NYT)도 장문의 부음기사를 실었다. “메릴린 먼로가 섹스 심벌, 그레이스 켈리가 얼음여왕, 오드리 헵번이 영원한 말괄량이였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의 화신이었다.” 팝스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리즈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라며 깊이 애도했다.



 23일 79세로 타계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50~60년대 할리우드 고전영화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었다. 리즈(Liz·엘리자베스의 애칭)는 커다란 자줏빛 눈동자로 대표되는 미모, 여덟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남성편력, 에이즈 퇴치 등 사회공헌에 힘쓴 만년(晩年) 등 전 생애에 걸쳐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진정한 의미의 전설이자 스타였다.



◆미모=리즈의 미모는 ‘충격적’ ‘가슴을 죄는’ 등의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시대 분위기와도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할리우드는 부흥의 활력으로 가득했다. 이때 리즈는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겨우 17세이던 1949년, 8월 2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기사 제목은 ‘진흙에서 건진 위대한 사파이어들’이었다. “황홀경에 빠진 어느 홍보 담당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의 얼굴빛은 ‘한 송이 장미가 떠 있는 크림 사발’ 같다. 카메라맨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할리우드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리즈에겐 나쁜 앵글이 없다’”고 보도했다.



 ‘지난 여름 갑자기’(59년)와 ‘클레오파트라’(63년)를 연출한 조셉 L 맨키위즈 감독도 “리즈는 내가 일생을 통틀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고 기억했다.



 이런 점에서 리즈의 타계는 상징적이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중심으로 꽃핀 할리우드 고전영화 시대 여배우들의 세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음을 보여준다. 에바 가드너·잉그리드 버그먼·그레이스 켈리·오드리 헵번·메릴린 먼로 등에서 알 수 있듯 압도적인 외모에서 뿜어 나오는 우아함과 카리스마가 이들의 특징이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리즈는 당시 미인의 전형으로 통하던 금발이 아니라 흑갈색 머리였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탁월한 외모로 50~60년대 미의 스탠더드가 됐다. 60년대 이후 할리우드 여배우 중 외모나 생명력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망=이런 외모 덕에 리즈가 동시대 남성들의 로망이 된 건 당연했다. 리즈는 51년작 ‘젊은이의 양지’에서 사교계의 꽃인 앤절라를 연기했다. 연출자 조지 스티븐스 감독은 “모든 미국 청년에게 ‘저런 여인이라면 결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하는, 노란색 스포츠카를 탄 아름다운 소녀”를 원했다.



 리즈는 그런 여자였다. 복잡한 사생활 탓에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여성들에겐 대리만족을 주기도 했다. 메릴린 먼로처럼 노출을 통해 섹시미를 발산한 배우가 아니었지만,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한 사생활을 통해 50~60년대 보수적인 시대를 살던 여성들에게 통풍구 역할을 했다.



◆연기력=‘젊은이의 양지’는 44년 ‘녹원의 천사’로 깜찍한 외모와 연기력을 뽐냈던 리즈가 성인 연기자로 자리매김한 작품이기도 하다. 리즈의 고혹적인 수영복 차림은 큰 화제를 뿌렸다. 63년작 ‘클레오파트라’는 호평을 받진 못했지만 할리우드 배우로선 최초로 개런티 100만 달러를 받는 대기록을 남겼다. 66년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그가 몸무게를 일부러 늘려가며 연기의 지평을 넓히고자 도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일부 평론가는 “미모에 비해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다”고 보기도 한다. 반면 NYT는 부고기사에서 “이는 연기력을 가릴 만큼 미모가 뛰어났다는 얘기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M’의 이명세 감독은 “김지미·강수연 등이 ‘한국의 리즈 테일러’라는 식으로 불릴 만큼 리즈는 불꽃같이 살다간 멋진 배우다. 외모도 연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