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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폐지 심사 맡겼더니 … “막아줄게” 돈 받은 위원들

중앙일보 2011.03.25 00:11 경제 9면 지면보기



관리 기능 구멍 뚫린 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의 상장기업 관리 기능이 위기에 빠졌다.



 기업의 상장 폐지를 결정하는 심사위원이 상장 폐지를 막아주겠다며 기업에 거액을 받아 챙기는가 하면, 상장사가 감사 의견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회계사를 회유·협박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24일 한국거래소 직원 등에게 로비해 상장폐지를 막아주겠다며 코스닥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공인회계사 김모(47)씨와 조모(43)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거래소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으로 있던 2009년 5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S수산에 ‘다른 위원에게도 로비해 주겠다’며 이 업체로부터 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도 심사위원으로 있던 같은 해 4월 다른 기업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김씨는 소속 회계법인이 2009년 9월 9일 금융위원회로부터 허위감사로 6개월간 영업정지 징계를 받았음에도 거래소는 한 달이 지난 다음에서야 김씨를 심사위원에서 해촉했다. 또 조씨는 심사의원 재직 중 감사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사실이 밝혀져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제도는 2009년 2월 시장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좀비 기업’을 즉시 시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심사위원은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업체로부터 뒷돈부터 받았다. 이러한 부정은 제도의 불투명성 때문에 예견됐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우선 심사의원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 거래소는 “2009년 회계·법률 전문가와 학계 출신으로 다양한 풀을 5배수로 만들어 20명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거래소는 지난해 5월부터 심사위원을 30명으로 늘렸다. 상장폐지 관련 사안이 생기면 이들 가운데 8명이 회의를 열어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한다. 최종 결정까지는 불과 3~5시간 걸리며 다수결로 한다.



 하지만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 외부의 의견을 묻는 과정은 없다. 또 명확한 선정 기준도 없다. 거래소의 담당 본부장이 최종 결정하면 그만이다. 부적격 인사를 솎아낼 체계적인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 위촉이 학연·지연·로비 등에 영향받을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거래소는 기업 로비 우려를 이유로 ‘비공개’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위원 선정도, 회의 내용도 모두 공개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부적격한 인사가 부적절한 결정을 해도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업계에는 상장폐지 탈출을 도와준다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는데 거래소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이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심사위원 선정을 위한 명확한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닥 기업인 제일창업투자의 회계사 협박설도 상장사 관리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제일창투는 18일 지난해 결산보고서에 대해 ‘적정’ 감사의견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 측은 그날 오후 ‘의견 거절’로 정정했다. 의견 거절을 받으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일창투가 회계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융감독당국도 23일 조사에 나섰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담당 회계사와 연락도 못한 채 담당 회계사의 ‘단독 행위’로 결론을 내렸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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