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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꽃샘추위

중앙일보 2011.03.25 00:09 종합 33면 지면보기








꽃바람이 화풍(花風)이고, 봄을 전하는 꽃바람이 화신풍(花信風)이다. 꽃잎을 스쳐 지나온 바람으로 봄이 오고 가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화신풍인데 모두 스물네 가지가 있었다. 북송(北宋)의 주휘(周煇)가 편찬한 『청파잡지(清波雜志)』는 ‘초봄부터 초여름까지 모두 스물네 번의 화신풍이 부는데, 매화풍(梅花風)이 가장 먼저고 연화풍(楝花風)이 가장 나중’이라고 적고 있다. 초봄부터 초여름은 양력 1월 6~7일께의 소한(小寒)부터 양력 4월 20일께의 곡우(穀雨)까지 120일간을 뜻하는데, 이때 닷새에 한 번씩 모두 스물네 번의 꽃바람이 분다는 뜻이다.



 중국 고대 풍속지인 『세시잡기(歲時雜記)』는 스물네 번의 화신풍을 모두 적고 있는데, 소한에 부는 바람이 매화풍이고, 양력 3월 21일께인 춘분(春分)에 해당풍(海棠風)이 불고, 그 닷새 후에 이화풍(梨花風)이 불고 곡우에 마지막으로 연화풍이 불면 양력 5월 5일께인 입하(立夏)로서 여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운치 있는 시간 읽기였다. 화풍에는 꽃샘바람이라는 뜻도 있다. 보다 정확히는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란 뜻의 투화풍(妬花風)이다. 고려 후기 문인 이규보는 투화풍(妬花風)이란 시에서 “꽃필 때 거꾸로 바람이 많이 부는데/사람들은 이를 꽃샘바람이라 하네(花時多顚風/人道是妬花)”라고 노래했다. 조선 초·중기의 문신 정수강(丁壽崗)은 태풍 같은 꽃샘바람을 경험했다. 그의 문집인 『월헌집(月軒集)』에는 “하룻밤에 광풍이 불어 갑자기 모든 것을 쓸어갔네/새벽이 오니 모든 나무 다 뽑혀 텅 비었네/사람들은 이 바람을 꽃샘바람이라 말하지만/나는 꽃샘바람 아니라고 말하네(一夜狂風忽掃去/曉來樹樹盡成空/人言此風能妬花/我言妬花非此風)”라고 읊었다. 나무를 뽑아 버릴 정도의 바람이라면 꽃샘바람이 아니라 기상이변이란 뜻이리라.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을 수원 화성으로 이장하고 찾아가는 새벽길에 꽃샘추위를 만나고 “아버지께 근친 가는 다리 가 길목에서/꽃샘바람이 새벽 안장을 흔드네(逌覲橋邊路/花風曉拂鞍)”라는 시를 읊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이유(李濰)의 시 중에 ‘미친 꽃샘바람(妒花狂風)’이란 제목의 시가 있다. 해당풍이나 이화풍이 불어야 할 양력 3월 하순에 눈보라가 내리는 올해의 꽃샘바람을 말한 것 같다. 화신풍 대신에 한설풍(寒雪風)이 매섭지만 꽃은 피고 봄은 올 것이며, 그런 자연과 더불어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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