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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엔 엄마 손 잡고 도서관 가요

중앙일보 2011.03.22 05:23



“옛날 옛날에…” 다정한 할머니 목소리에 눈 반짝~ 귀 쫑긋~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수지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는 2~3살 어린이의 손을 잡은 엄마들이 모여든다. 책 읽어주는 할머니 이금옥(67?용인 상현동)씨가 들려주는 동화를 듣기 위해서다. 지난 15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동화책 읽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이곳에 찾아들었다.



동화책 통해 인성·상상력 키워



 기다리고 있던 이씨의 손에는 7~8권의 동화책과 동화구연을 위한 소품이 가득했다. 20~3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더 재미있고, 더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해온 것이다. 아이 3~4명이 모이자 동화책 읽기가 시작됐다. 첫 번째 동화는 창작동화 『고양이는 심술쟁이』. 등장 인물에 따라 목소리톤을 달리하고, 때로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이씨의 책 읽기에 아이들이 빠져든다.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 동화작가 이규원의 『아기토끼의 사계절』 등이 이어진다. 호랑이 가면, 바람 등의 소품을 사용하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인다. 이씨가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일어나서 앞 쪽으로 다가가거나 책상 위에 엎드리는 등 자유롭게 듣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의 동화책 읽기를 마치려는 찰나한 아이가 “뽀로로가 듣고 싶다”고 청한다. 이씨는 선뜻 뽀로로 시리즈 중 한 권인 『빨간모자 패티』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읽어줄 책은 이씨가 정한다. 동화읽기를 들으러 오는 아이들 연령은 0~4세.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다. 아직 고정관념이 없는 어린나이인 만큼 설명이 많은 동화보다 스스로 깨닫고 상상할 수 있는 책을 택한다. 동물 인형 등 동화구연 소품도 분위기를 띄울 때만 사용한다. 아이들 머리 속에 고정 이미지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주 이야기는 읽어주지 않는다. 판타지 요소가 많은 내용은 6~7세 이상일 때 접해야 할 것 같아서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래동화는 매번 읽는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옛 이야기의 구수한 맛을 살려 읽어주면 아이들도 흥을 느낀다. 이씨는 책 선택 기준으로 ‘인성’을 먼저 꼽았다. “어린 시절 교육이 중요하잖아요. 좋은 책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품과 생활습관을 키워준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선택에 신중을 기하게 돼요.”



 책 읽기를 시작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사들인 책 만도 450여 권. “많은 시간을 들여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기란 쉽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읽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래서 새로운 책을 찾아 다니기 시작한 거죠.” 그는 일년에 두 번 열리는 유아교육박람회에는 빠짐없이 참석한다. 인기동화 뽀로로도 그렇게 찾았다.



 “아이들에게 인기라서 봤더니 교우관계, 예절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더군요. 당장 시리즈를 모두 구입해 읽어주기 시작했죠. 아이들이 ‘다음 책은 안 나오냐’고 보챌 정도예요.”



이야기를 전하는 재미 함께 나누고파



 이씨가 동화책 할머니가 된 것은 고등학교 과학교사를 퇴직하면서부터다. “몇 달 집에서 쉬었는데 너무 답답했어요.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작정 수지도서관에 전화를 해서 책을 읽어주겠다고 했죠.” 마침 도서관이 개관한 지 일년 남짓 지나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때였다.



 도서관 측의 “나오세요”란 답변에 그는 책몇 권을 챙겨 나갔다. 그렇게 수지도서관에서의 봉사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밋밋한 책 읽기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동화구연을 알게 됐다. ‘이거다’ 싶어 동화구연을 배우기 시작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구연동화 자격증을 따고 지도자 과정을 마쳤다. 지금도 동화구연가 모임인 ‘동화사랑 시니어’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화구연을 공부할 때 옛 제자를 만나기도 했다. “교사, 학생 사이가 동기생으로 변한거죠. 그 친구는 어색했을지 몰라도 저는 같이 소품을 만들고 이야기를 엮어가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7년 간 매주 도서관에 나오면서 만난 아이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 동백에서 매주 찾아왔던 성재, 꼭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줘야 한다고 떼를 썼던 소정이, 동생이 생기자 자신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생각해 투정을 부렸던 지태 등. 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동화책을 들으러 온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고, 형에 이어 동생이 동화책을 들으러 오기도 했다.



 입소문이 나 한 번에 30~40명이 모여들면서 엄마 팬도 생겼다. 책 읽기가 끝나면 엄마들에게 독서지도나 육아, 가정 문제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오후 3시였던 책 읽기 시간을 지난해엔 오전으로 옮겼고,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올해는 동화책을 들으러 오는 아이 엄마 중 관심을 가진 8명에게 동화구연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오는 7월 구연동화 자격증 3급, 12월 2급을 따는 게 목표다. 이씨는 “재능 있는 엄마가 너무 많다”며 “엄마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니 더 재미있게 동화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들에게 다양한 길을 알려주고 열어줄 수 있다면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설명] 수지도서관의 책 읽어주는 할머니 이금옥씨가 어린이들에게 그림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신수연 기자 ssy@joongang.co.kr/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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