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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世說)] 재난의료시스템 재정비하라

중앙일보 2011.03.22 00:24 종합 33면 지면보기






왕순주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망·실종은 물론 물·식량·약 부족과 대피소의 열악한 상황으로 노약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실정은 어떠할까. 방사선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예보를, 지진이 많지 않다는 자연환경을 천운이라고만 생각하면 되는 일일까. 물론 국내 병원들은 전기에 대해서는 자체 비상 발전 체계를 대부분 갖추고 있어 일시적인 전력 공급의 중단에는 대처가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재난 시 병원은 외부 지원 없이도 72시간 동안 독립적으로 의료를 제공하고 자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선 병원 내 재난의료 대책은 서류상에서만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 재난 시 지침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복적 훈련 연습이 충분해야 위기 시 대응이 가능한데, 그러한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 병원 중 재난 시 식수·식량 등 생명선과 비상 의료물품·통신장비 등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은 5곳당 1곳에 불과했다. 원전 사고 같은 화생방 재난 시 대부분의 우리나라 병원은 지침·장비·오염보관함 등의 기준에서 기초적인 것도 갖추지 못했다. 다행히 원전 주변에 이송할 병원들을 대상으로 방사능 사고 대비 지정병원으로 준비했고, 해당 장비도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다.



 많은 대형병원은 평소에도 환자가 몰려 입원하기 어려운 상태인데, 재난 시 진료를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실제 상황에선 기존 환자들과 재난 응급환자들이 뒤섞여 대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정부가 재난 대비 의료체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행동이 없는 한 당분간 각종 재난에 대한 의학적 대응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재난 관련 예산 중 더욱 많은 부분이 인명피해 감소를 위한 재난 보건의료 및 그 체계 확립에 사용돼야 한다. 아직도 재난 발생 시 아픈 사람은 병원에 이송하면 되고, 재난 관련 건강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개념으로 재난 대비를 한다면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재난 시 심각한 수준의 인명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왕순주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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