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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리비아 ‘엄친아’의 희망

중앙일보 2011.03.22 00:2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상언
파리 특파원




‘밤 하늘의 비행기가 별똥별이라면 소원을 빌 수 있을 텐데….’ 지난해 유럽에서도 대유행한 미국 가수 보비 레이의 노래 ‘에어플레인스’가 사막 횡단도로를 질주하는 차 속에 울려퍼졌다. 운전대를 잡은 대학생 소하일(23)은 연신 머리를 흔들며 박자를 탔다. 지난 10일 리비아에서 카다피군과 시민군의 전선이 형성된 라스라누프를 갈 때의 일이다. 전투기 공습이 한창인 지역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요란한 팝송이라니, 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일인가.



 소하일을 처음 만난 곳은 리비아 시민군의 거점도시 벵가지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을 외신 기자들에게 보여주기에 바빴다. 지난달 19일 밤 카다피 친위부대가 벵가지 시내에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었다. 영상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친구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했다. 유튜브에 이 영상을 올리려 했으나 정부가 인터넷을 끊어버려 기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도 했다.



 그에게 라스라누프까지 갈 차와 운전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택시운전사들이 목숨 걸고 가야 하는 곳이라며 ‘절레절레’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도 한번 전선에 가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그는 다음 날 좀 낡기는 했지만 시속 200㎞까지도 무리 없이 달리는 독일제 아우디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다. 자기 소유의 차라고 했다.



 벵가지에서 라스라누프까지 왕복 약 900㎞를 9시간가량 함께 오가며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짙은 눈썹과 높은 콧대의 준수한 외모를 가진 소하일은 리비아에서 가장 큰 대학인 가리니우스대 공대 4학년으로 양친은 모두 의사였다. 이탈리아·터키·이집트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도 있었다. 영어도 곧잘 했다.



 이런 리비아의 ‘엄친아’가 뭐가 답답해 총알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갔는지 궁금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투표로 뽑느냐”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연애를 하느냐” “클럽은 있느냐” 등의 질문을 해댔다. 태어나 지금까지 국가지도자는 무아마르 카다피 한 사람뿐이고, 젊은 여성들은 거리를 활보할 수 없고, 노래 듣고 춤추는 공간이 없는 나라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해외 여행을 하면서 확인했던 것이다. 그에게 절실한 것은 ‘자유’였다.



 리비아 옆 나라 이집트에서도 소하일과 비슷한 젊은이를 여럿 만났다.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인기 대학에 다니는 중산층 출신이었다. 소득과 교육 수준 성장을 배경으로 해외 여행과 인터넷으로 세상물정을 알게 된 청년들이 광장으로 몰려 나오는 것을 보면서 ‘웬만해선 이들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하일과는 며칠째 통화가 안 되고 있다. 카다피 정권이 국제전화를 끊은 것인지, 그의 전화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에어플레인스의 가사처럼 리비아 상공에는 지금 연합군의 미사일과 카다피군의 방공포가 별똥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가 무사히 생존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자유의 나라를 소원하고 있기를 기원한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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