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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세상의 모든 계절

중앙일보 2011.03.22 00:15 종합 25면 지면보기



친구의 행복에 다가갈수록
더 커지는 외로움은 뭐지





영화를 보면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보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서 나의 미래를 떠올리기 때문 아닐까.



 ‘세상의 모든 계절’(사진)은 한 여자가 남의 집 식탁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으로 끝난다. 끝나는 장면부터 얘기하는 이유는 행복한 사람들 옆에 있어도 결코 내 자신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세상의 엄정한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인상적인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두 시간 가까이 많지 않은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잠시도 하품할 틈을 주지 않는 건, 인생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의 수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피 고 럭키’‘비밀과 거짓말’ 등으로 영국 중산층 삶을 세밀화로 그려냈던 마이크 리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행복한 남의 집 언저리를 기웃거렸던 이 여자의 이름은 메리(레슬리 맨빌)다. 병원에서 사무를 보는 그는 동료이자 심리상담사인 제리(루스 쉰)에게 의지한다.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 부부는 흔히 말하는 ‘행복한 노후’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60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일하고 있고, 자그마한 집도 있고, 몸도 비교적 건강하고 텃밭을 열심히 가꾸는 덕에 정신도 건강해 보인다. 반면 이혼의 아픔, 경제적 고통, 혼자라는 외로움은 메리를 필요 이상으로 수다스럽게 만들고 술에 의존하게 만든다.



 영화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등 계절의 순환을 따라간다. 계절이 바뀔수록, 행복함에 다가갈수록 불행함은 커지는 역설이 처참하다.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피난처’처럼 불운한 지인들에게 제공한다. 아내를 잃고 망연자실한 형을 집으로 데려오고, 활력을 잃은 친구 켄(피터 와이트)을 초대해 격려한다. 아들 조이(올리버 맬트맨)가 참하디 참한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는 대목에서, 가진 자의 행(幸)과 가지지 못한 자의 불행(不幸)의 격차는 최대치가 된다. 메리는 돌출행동을 하고, 우정은 깨어진다.



 삶은 어떤 사람에겐 참 잔인하다는 사실을 곱씹게 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메리를 연기한 레슬리 맨빌이라는 배우가 궁금해질 것이다. 이 배우는 불안감과 슬픔, 절망과 피로 등의 감정을 한 얼굴 안에 고루 담는다. 감정표현에 필요한 얼굴의 모든 근육을 100%, 아니 그 이상 사용하는 듯하다. 마이크 리 감독 영화에 출연한 건 이번이 아홉 번째. 영국배우가 영국영화로 전미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4일 개봉. 전체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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