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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깡의 작가, 플라스틱에 온기를 입히다

중앙일보 2011.03.22 00:14 종합 25면 지면보기



국내 첫 개인전 ‘패밀리’전 여는 설치미술가 이은숙



빛과 섬유를 이용한 투명 가구로 구성된 ‘패밀리’ 연작과 함께한 이은숙 작가. “갈등하고 상처투성이의 가족들에게 따뜻한 빛과 같은 위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그는 집념의 작가다. “깡도 실력”이라고 말한다. 남다른 배짱과 뚝심으로 작업해왔다. 국내 공모전에서 거푸 낙방하자 외국을 두드렸다. 한국에서 ‘싹수’가 안보이자 1990년대 초 캐나다로 날아갔다. 이후 독일로 거처를 옮겼다. 2005년 히틀러 지하벙커, 2006년 포츠담회담장이던 체칠리렌 호프 궁전 호수에서 빛과 섬유를 이용한 설치미술로 주목 받았다.



 2007년에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베를린장벽 붕괴 18주년 기념전을 열었다. 제작비가 없어 서울의 집을 팔기도 했다. 당시 독일 언론의 평가가 대단했다. 저 멀리 분단국에서 날아온 작은 여성이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그 자리에 ‘사라진 베를린 장벽’ 설치물을 선보였기 때문.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BBC월드뉴스에도 출연했다. 작가는 투명장막에 자신을 포함한 이산가족 5000명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월남한 아버지에게는 북에 두고 온 4자녀가 있다. 평생 그들을 그리워하셨다”고 했다. 작품은 2년 뒤 베를린 ‘빛의 축제’에도 초대받았다.



 이은숙(55) 작가 얘기다. 그가 서울 서초동 갤러리 마노에서 4월 7일까지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다. 한국이 날 몰라주면 세계가 날 알게 하겠다고 고국을 떠난 뒤 20여 년만이다. 제목은 ‘패밀리’. 지난해 11월 작가의 부친이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후에 매달린 작품이다. 전시장을 채우는 건 투명하게 빛나는 의자와 탁자, 그리고 소파다. 베를린 장벽 때처럼 투명한 폴리에틸렌 소재 안에 이름이 적힌 종이조각과 실을 넣고 형광램프를 달았다.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구라, 가족의 의미를 쉽게 환기시킨다. 유리나 얼음조각처럼 보일 수 있는 가구들은 빛과 만나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잠시 쉬어가는 전시입니다. 제가 머문 여러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족사를 듣고, 그들의 이름을 적어 넣었어요. 입양·동성애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함시켰습니다. 고통과 갈등, 분열과 분단이 있는 곳에 위로를 주고,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뜻이죠. ”



 그의 차기 프로젝트는 파리 콩고드 광장에 마음속 벽을 허물자는 뜻의 ‘월 오브 허트’를 세우는 것이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묘역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씨는 이화여대 미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계파중심의 한국화단에 자리잡을 수 없어 외국행을 택했다고 했다. 개인사도 험난했다. 아마추어 시절 입었던 중화상이 창작의 에너지가 됐다. 부엌에서 파라핀으로 작업하다가 불이 붙었던 것. 3년 동안 외출은 고사하고 대소변도 받아낼 정도였다. 의사는 오른 팔을 아예 쓰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오른팔은 8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기능만 돌아왔을 뿐 감각은 비정상”이라고 했다. “이상하게 그런 시련이 닥치니까 작업에 대한 열망이 치솟는 거예요. 가족들이 말렸지만 불화를 무릅쓰고 작업에 미쳤죠.”



 90년대 처음 선보인 폴리에틸렌 소재와 형광색도 유치하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현실이 힘들수록 꿈은 더 강해졌어요. 이케아(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창고를 채울 만큼 작업하겠다고 맘먹은 적도 있죠.”



 그는 전시 직후 출국해 파리 프로젝트에 매달릴 작정이다. “베를린 때도 모두가 코웃음 쳤습니다. 전 항상 바닥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는 꿈과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죠. 제가 죽은 뒤에도 200~300년 남는 작업을 한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02-741-6030.



글=양성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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