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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위기, 일본은 지금 (상) 엄숙주의 떨친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

중앙일보 2011.03.22 00:00 종합 27면 지면보기

몇 해 전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70) 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얘기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대중문학의 득세로 문학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진단이었다. 일본을 통해 근대문학을 수입했던 한국에서도 문학위기론이 비등했다. 앞으로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 일본의 대표적 평론가, 문학편집자를 만나 ‘문학의 앞날’을 내다봤다.




소설을 DB로 읽는 시대, 근대문학은 끝났다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는 문학의 엄숙주의를 부정한다. 대중소설도 과감하게 분석하자고 말한다. 그의 SF소설 『퀀텀 패밀리즈』가 번역 출간됐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40)는 요즘 일본 문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평론가의 위신, 문학적 엄숙주의를 일찌감치 던져버렸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트 노벨’ 등 대중문학을 진지하게 분석한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요즘 일본 독자들이 소설을 ‘데이터베이스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이다. 만화·애니메이션·영화 등의 영향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소설 독자가, 쉽게 말해 과거 재미 있게 봤던 만화 영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아즈마가 주목한 일본의 현실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문학 위기론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퀀텀 패밀리즈』(자음과모음)가 번역, 출간됐다. 양자역학 등 최신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평행우주(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동일한 우주가 어딘가 존재한다는 이론)간 이동이 가능해 진 근(近)미래가 배경이다. 가족 네 명의 애증, 만남과 이별을 얘기하고 있다. 전문 과학용어가 다수 등장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장면도 적지 않다.



 8일 도쿄에서 아즈마를 만났다. 소설 얘기와 그가 생각하는 소설의 운명 등을 들었다. 일본 비평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준비 중인 안천(37)씨가 통역을 했다.



-대중문화 평론서에 이어 이번엔 SF 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양자역학 같은 물리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독서 경험을 살렸다. SF와 순문학의 중간쯤 되는 작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 네 명이 각자 서로 다른 평행우주 출신이다. 네 가지 버전의 가족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가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게 우리가 사는 현실에 부합한다고 본다. 가령 1년 전에 발생한 어떤 사건을 복원한다고 치자. 요즘처럼 정보가 많은 세상에서 하나의 단일한 현실을 확정하기 어렵다. 보는 이에 따라 사건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 사고를 극단화해 본 소설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소설에서 자주 언급된다. 일본 평단은 대체로 하루키에 대해 비판적인데.



 “하루키는 일본 작가로는 처음으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떠나 읽히는 작가다. 후기자본주의의 익명적인 도시문화와 감성 때문에 보편성을 갖는 것 같다. 특이한 것은 그의 작품에 아버지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1Q84』 2권에서 주인공 덴고가 아버지와 화해하는 장면 정도랄까. 대안 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전공투(全共鬪) 세대로서, 하루키는 일본 사회에서 미성숙한 아이의 역할을 해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내 취향은 아니다. 『상실의 시대』를 유일하게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문학위기론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몇 해 전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이 큰 파장을 불렀다.



 “문학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분(고진)은 연세가 많기 때문에 끝났다고 얘기하고 돌아가시면 그만이다. 남은 사람들은 종언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보는 근거는 뭔가.



 “지금까지 소설 혹은 문학을 유지했던 제도적인 장치들, 가령 문학상이나 신문의 문예란, 문예지를 통한 등단 제도, 작품의 생산 시스템 등이 장기적으로는 없어질 것 같다. 이런 것들은 피라미드식 위계질서로 묶인 기득권 공동체이다. 이런 시스템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 또 끊임없이 쓰여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소설 소멸론이나 소설 당위론에 상관 없이 근대 소설은 사라질 것이다. 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당위론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퀀텀 패밀리즈』는 핵가족보다 더 불안정한 요즘 가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는 것 같다.



 “사람의 일회적인 인생은 쉼 없이 뭔가를 선택하는 한편 다른 가능성은 포기하는 과정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의 가능성, 불확정적인 가족 현실 등을 그려보고 싶었다.”



도쿄=글·사진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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