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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김정일, 카다피 비명이 들리는가

중앙일보 2011.03.20 20:09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지난 3월 11일 일본에 지진이 났을 때 가장 기뻐한 이는 카다피와 김정일일 것이다. 세계의 이목이 일본에 쏠리자 카다피는 ‘시민군 사냥’을 시작했다. 지진 전만 해도 김정일은 카다피는 곧 무너지고 평양에도 이상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이상한 일은 일본 동부에 생겼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실망스럽게도 쓰나미는 다시 리비아로 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가장 악질적인 독재정권은 서방 전폭기의 공습으로 무너졌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2003년 이라크 후세인이 그러했다. ‘민간인 보호’라지만 서방 전폭기가 노리는 건 사실상 카다피 제거다. 전폭기가 뜨지 못하고 탱크가 부서지면 카다피 군대는 급속히 이반(離反)할 것이다. 이라크가 그러했다. 그러면 카다피의 운명은 다섯 가지뿐이다. 시민군에게 체포되거나 사살되는 것, 서방의 공습에 의한 사망, 측근의 암살, 자살, 그리고 해외 도주다. 그가 아프리카 구석으로 도망치더라도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따를 것이다. 그는 이런 걸 잘 안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광기 어린 연설은 비명의 다른 형태다.



 20세기 이후 다른 나라 국가원수로부터 공개적으로 “미친 개” 소리를 들었던 독재자는 카다피와 김일성 두 명뿐이다. 86년 4월 5일 서베를린에 있는 미군 전용 디스코텍에서 폭발물이 터져 미군 2명이 죽었다. 미국이 리비아의 소행으로 단정하자 4일 후 카다피는 미국을 “미친 초강대국”이라고 비난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밤 기자회견에서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불렀다. 6일 후 미국은 카다피 관저를 폭격했다. 카다피는 부상을 입었고 딸은 죽었다. 그보다 10년 전인 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죽였다. 다음 날 박정희 대통령은 제3사관학교 졸업식 훈시에서 선언했다. “미친 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이틀 후 한·미 연합군은 전쟁을 각오하고 미루나무 절단작전을 벌였다.



 카다피와 김일성은 장기독재 기록에서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최장 기록은 김일성과 쿠바 카스트로의 49년이다. 이를 깰 수 있는 유일한 이가 42년짜리 카다피였다. 그러나 카다피는 결국 기록을 깨지 못할 것 같다. 리비아와 북한은 테러에서도 난형난제(難兄難弟)다. 그들은 오랫동안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리비아는 27년, 북한은 20년이다.



 많은 점에서 비슷한 카다피와 김정일…. 그렇다면 그들은 최후도 같을 것인가. 물론 두 사람에겐 다른 점도 많다. 주민을 누르는 공포와 통제의 무게가 다르다. 리비아 국민은 인터넷과 트위터·휴대전화를 쓸 수 있었다. 북한엔 거의 없다. 리비아는 군대와 보안요원이 수도에 집중돼 있다. 반면 북한은 전역이 병영이요 경찰서다. 리비아에는 북한과 같은 지독한 개인숭배의 최면제가 없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는 게 민중봉기만 있는 게 아니다. 장기독재·세습 정권엔 언제든 규모 9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굶주림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독재정권이 차례로 무너진 소리가 북한의 담을 넘으면 김정일 권력은 언제든지 금이 갈 수 있다. 몇 발의 총성이 될지 쿠데타가 될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건 올 것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또 서방과 한국을 속이려 한다. 백두산 화산을 의논하자고 하고 사할린 가스 수송관 건설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농축우라늄 문제를 6자회담에서 다룰 수 있다고도 한다. 모든 게 상황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속임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것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설픈 남북대화나 6자회담은 역사의 통증을 속이는 모르핀이다. 남한은 모르핀은 쓰레기통에 던지고 다가오는 운명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일에게 “변하지 않으면 카다피 꼴 난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10년의 모르핀이 암 덩어리만 키워놓았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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