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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른 한국과 일본, 그래도 선의는 싹튼다

중앙선데이 2011.03.20 05:25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피터M벡 미국 동서문화센터 포스코펠로



일본 도쿄의 땅은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 너무 요동하다 보니 실제 지진인지 아니면 내 착각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일본 공영 NHK 방송은 그동안 24시간 내내 고통 받는 이재민 소식과 희생자 정보를 방송했었다. 오늘에야 겨우 24시간 재난방송 체제를 중단했다.



그런 와중에서 후쿠시마 제1 원전 사태가 발생했다. 원자로 한두 개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외국 정부는 서둘러 자국민들을 대피시켰다. 대사관과 영사관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나의 아버지도 일본을 떠나라고 내게 간청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내가 별로 겁이 안 나는 건 아마도 한국에서 몇 년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야말로 북한이라는 ‘화약고’를 옆에 두고 살지 않는가. 동시에 나는 일본인들이 이번 비극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생생하게 지켜 보고픈 마음도 있었다.



지금 도쿄는 초현실적(surreal)이라고 할 만큼 너무나 평온하다. 바깥세상은 난리지만 정작 도쿄 사람들은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즐겨 가는 라면 집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줄이 길어 건물 모퉁이를 감쌀 정도다. 라면집 주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직원들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침착한 일본인들을 보면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의 속내를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텅 빈 수퍼마켓에 가보면 그들의 실제 삶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빵이나 우유·화장지·건전지 등을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생필품을 구하려고 길게 줄을 서 기다렸다. 무한한 인내심이었다. 약탈이 벌어졌다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표현하기 힘든 두려움 속에서도 이런 평온함을 유지하는 걸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일본 기자가 지하철 운행이 재개되기를 24시간 꼬박 기다린 사람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시요가나이(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한국이라면 아마도 “억울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한국 천안함 침몰 이후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충돌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했었는데, 이런 일은 일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인의 운명주의는 극단적인 수동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수동성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많다. 반면 한국인의 가슴속에는 불길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은 좋다 나쁘다를 분명히 표현한다. 일본인은 대부분 그런 불길을 잃어버렸다. 한국인은 위협적이거나 강력한 이웃 국가가 있으면 편치 못하다. 하지만 일본인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자신들을 추월한 것을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인 이번 사태에 대해 놀라운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정치 리더들은 간신히 상황에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 일본 정부는 지난해 칠레에서도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형 지진사태를 맞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게다가 간 나오토 총리는 정치적으로 약한 존재다. 그는 인기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지진을 맞았다. 쓰나미가 쓸고 간 뒤 그는 몇 차례 연설했지만 국민의 사기를 높이거나 희망의 불꽃을 지피지는 못했다. 쓰촨 대지진 때의 원자바오 중국 총리처럼 현장을 지휘하거나 이재민을 어루만져 주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도쿄전력(TEPCO) 쪽으로부터 제때 상황을 보고받지도 못했다. 일왕 등이 나서 그의 약한 리더십을 보충해 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후쿠시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한국처럼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운용하는 나라들은 안전성을 면밀히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 발전소의 역할도 다시 평가해봐야 한다.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의 원가는 원전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핵재앙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지불할 가치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1995년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한국인들은 일본의 지진 피해 상황에 큰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이번엔 다르다. 요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본 피해를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다. 여러 가지 도움을 아낌없이 주고 있다. 일본 언론은 피해 상황 보도에 바빠 이런 사실을 크게 전하지 못하고 있고, 보통 일본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두 나라 국민 사이에 좋은 감정이 싹트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를 외교적인 관계로 승화시키는 일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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