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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이야기(5)]“40년 갈고 닦은 정책, 못 써봐 가슴 아프고

중앙선데이 2011.03.20 04:22



새로운 시작의 첫 걸음



김영사 박은주 사장이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방문했을 때 DJ 자택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박사장, DJ, 장성민 전 의원. 1993년 4월 8일 아니면 9일이다. [장성민 제공]







‘인간 김대중’ 연재에 대해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오래전 일들을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느냐, 진짜 DJ가 말한 그대로냐?” 그 질문에 답변드린다. 나는 DJ가 했던 중요한 지시와 발언들을 거의 빠짐없이 기록해놨다. 하나하나 받아 적고 일기처럼 그걸 보관해왔다. 내겐 보물처럼 소중한 수첩 수십 개와 3.5인치 플로피디스크 40여 장에는 가까이서 관찰한 DJ의 말과 행동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책으로 수십 권 분량이다. 왜 그런 짓을 했나? DJ가 역사적 인물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서와 부인에겐 영웅이 없다’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으면 약점까지 다 보인다. 그러나 DJ는 자식보다 어린 나에게 대부분 존칭을 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그는 논리가 없으면 행동하지 못했다. 때론 자기가 세운 논리의 포로가 되기도 했지만 정치 지망생이던 나에게 그런 DJ는 항상 놀라웠다. 우표 수집하듯이, 언젠가 DJ 평전을 쓰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모든 언행을 기록해왔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그걸 공개하는 것이다.



1993년 3월 초 영국으로 DJ를 찾아간 얘기는 지난 호에 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관심, 서재에 걸려 있던 세계지도와 DJ의 각오 등에 대해서였다. 1차 방문에서 DJ로부터 자서전 출간 허락을 얻어낸 나는 일주일 뒤 귀국했다. 그때부터 날마다 가회동에 있는 김영사로 출근했다. 거기서 DJ 자서전 특별팀과 함께 일했다. 출간을 위한 모든 계획이 완료됐을 때 다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갔다. 자서전 아이디어의 최초 제공자였던 한양대 김용운 교수, 김영사 박은주 사장과 함께였다. 93년 4월 8일이었다. 김영사의 베테랑 편집자 한 명도 동행했다. 나는 DJ 자택에 묵고, 일행은 근처 글래스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DJ가 매일 아침 호텔로 출근해 자기 삶을 구술하면 김영사가 그걸 편집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 예정이었다. 첫날부터 사달이 생겼다. 자리에 앉은 DJ가 말했다. “먼저 책 개요에 대해 한번 설명해 보세요. 어떤 책을 만들면 좋을지. 그리고 나서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박은주 사장과는 DJ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걸로 이미 합의했었다. 타깃 독자는 젊은 층으로 잡을 계획이었다. 박 사장이 준비자료를 꺼내며 답변했다. “미래 세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였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에게 총재님의 인생과 철학을 담담하게 들려줬으면 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신념과 열정이 어디서 나왔는지 말이에요. 젊은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나침반이 되게 말씀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DJ가 물었다. “박 사장은 제 인생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줄 만한 가치와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사장이 그렇다고 하자 DJ가 다시 말했다. “그런 높은 가치와 내용이라면 제 인생 이야기를 왜 청소년들에게만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왕이면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들려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힐끗 보니 박 사장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예의상 가만히 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DJ가 책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조마조마했다. ‘자서전은 물 건너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DJ가 설득을 시작했다. “박 사장도 알다시피 제가 평생 정치를 업(業)으로 해온 사람인데 제 인생 얘기를 하라고 하면서 정치 얘기는 빼고 하자, 그렇게 하면 제가 할 말이 뭐가 있습니까. 평생 해온 게 정친데 그걸 못하면 국민한테 들려줄 얘기가 뭐가 있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누가 박 사장 보고 자서전을 출간하자면서 박 사장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말해요. 그런데 박 사장은 평생 해온 일이 출판업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책이나 출판 이야기는 빼고 합시다, 그렇게 말하면 그게 박 사장의 온전한 자서전이 되겠어요?”



박 사장은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DJ가 돌아간 뒤 다시 담판을 벌였다. 나는 “정치는 원론적인 것만 얘기하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전 국민을 대상으로 DJ가 인생을 얘기하는 걸로 하자”고 설득했다. 박 사장은 한참 만에 “알겠다. 하지만 현실 정치 얘기는 절대 안 된다. 이건 꼭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음날부터 녹음기를 앞에 두고 본격적인 구술이 시작됐다. DJ는 자기가 정치인이 아니면 교육자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생각을 잘 정리해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릴 들어왔다는 것이다. 정치에 뛰어든 건 운명이었고, 92년 대선에서 졌지만 정치에서는 승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대목에서 DJ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제 40년 정치 역정에 대한 평가는 역사와 국민에게 돌립니다. 하늘과 땅,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40년간 갈고 닦은 정책을 국민과 민족을 위해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게 참으로 한스럽고 가슴 아픕니다.” 어느새 그의 눈에선 눈물이 글썽였다. 그 순간, DJ는 더 이상 정치 거목이 아니었다. 회한과 비탄에 잠긴 한 인간일 뿐이었다. 다들 깜짝 놀라 DJ를 바라봤다. DJ가 돌아간 뒤, 누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서전의 순서가 정해졌다. 이심전심으로 “DJ의 정계 은퇴 심경 고백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구술에는 일주일이 걸렸다.



서울로 돌아와선 책 제목을 뭘로 할지 갑론을박이 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고 젊은이여 희망을 가져라 등이 당시 검토됐던 제목들이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로 결정됐다. 새로운 시작, 거기에는 중의적(重義的)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정치가 아닌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달리 보면 새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몇 달 뒤인 그해 7월 4일 귀국한 DJ는 “그 책 언제 나오나?” 하면서 자서전에 대한 관심을 간간이 표시했다. 새로운…은 93년 12월 10일 초판을 찍었다. 하지만 책이 나오기 전에 에피소드가 있었다. 책 홍보전략이다. 이번에도 DJ 자서전이 나온다는 특종을 DJ와 사이가 가장 불편했던 신문에 흘려줬다. DJ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해요. 언론과 불화가 없어야 돼요”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보수층에 DJ의 이미지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대통령 선거 개표일 저녁, 감동의 명연설 정계 은퇴 선언문으로 명실공히 우리 시대의 선생님이 된 김대중씨가 평생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때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때로는 열정적인 웅변으로 들려준다’. 그 신문은 그렇게 서평을 썼다.



책이 나오자 인기가 폭발했다. 전국에서 편지가 쇄도했고, DJ는 여기저기 강연에 불려 다녔다. 94년 4월까지 5개월간 63쇄를 찍었다. 총 65만 권이 나갔다. 이 자서전의 성공은 DJ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줬다. 그는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정치 복귀를 향한 그의 발걸음도 점점 가속을 내고 있었다.



정리=김종혁 중앙SUNDAY 편집국장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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