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전 폭발 이전과 이후

중앙선데이 2011.03.20 02:01 210호 2면 지면보기
원자력 발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부존 자원 없는 나라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석유·석탄보다 전력 생산비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전의 전력생산단가는 Kwh당 39원. 유연탄(60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액화천연가스(LNG·128원)나 석유류(185원)에 비하면 20~30%다. 신재생 에너지는 더 비싸다. 태양광발전 생산단가는 700~800원이다. 원전은 지구온난화 대책에도 딱이다. 코펜하겐의 유엔기후변화협약의 핵심은 기온이 섭씨 2도 이상 더 높아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더 이상 늘려선 안 된다는 의미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석탄이나 석유 의존도가 높아지면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4~5년 전부터 원전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다. 미국과 유럽은 1979년 스리마일섬, 86년 체르노빌 사고로 원전에 진절머리를 냈다. 원전 건설을 아예 금지하거나 최대한 제한했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에너지정책을 원전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원전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전체 발전량의 3분의 1 정도를 원전이 담당한다. 앞으론 훨씬 더 높아진다. 2030년까지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과 2024년까지의 전력수급계획이 그렇다. 2024년까지 원전 14개를 더 짓기로 했다. 지금 가동 중인 원전(21개)의 3분의 2가 더 생긴다는 얘기다. 원전 비중도 2024년에는 50%, 2030년에는 3분의 2로 대폭 늘어난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급변했다. 핵 재앙 공포 때문이다. 핵을 대하는 시선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폭발 사고의 ‘이전과 이후’로 대별될 것이다. 원전 르네상스는커녕 가동 중인 원전조차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게다. 일본은 여느 나라와 다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이며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가진 나라다. 안전 분야에선 신화를 자랑하는 나라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 폭탄의 공포를 경험했기 때문도 있다. 그런 나라도 진도 9.0의 대지진과 10m의 높이에 시속 700~800㎞의 속도로 몰려드는 쓰나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고 한다. 규모 6.5의 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다면서. 전원 공급 없이 수소를 제어할 수 있는 최신 설비가 설치돼 있다고도 한다.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철저히 대비한 일본도 역사상 초유의 대지진과 수백 년 만의 쓰나미 앞에선 굴복했다. 우리도 초유의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반문에 논박하기 쉽지 않다. 에너지는 원래 위험한 것이라는 설득도 먹혀 들지 못한다. 석유나 석탄도 잘못 다루면 대형사고지만, 원전의 가공할 피해에는 비할 바 못 된다. 원전을 더 이상 건설하지 못하면 전기요금은 급등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석탄이나 LNG 등으로 바꾸면 전기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내 집 뒷마당에 원전을 둘 순 없다”고 반발하는 주민들을 탓할 순 없다. 수명이 다 된 고리 1호기의 가동 연장을 놓고 말이 많은 건 그래서다. 주민과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울 방안은 사실상 거의 없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계획이 잡힌 14개의 원전을 과연 건설할 수 있느냐다. 경북 영덕이나 울진 등 새로운 지역에 건설할 작정이었지만 주민 반발이 거셀 것이라서다. “핵 앞에서 만만한 인류에 대한 경고”라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먹힐 경우 원전 추가 계획을 완전히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이 매우 높아졌음을 감안한다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계획도 바꿔야 한다. 주민 반발로 원전을 계획만큼 건설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원전 발전량을 줄일 경우 전체적인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는지를 따져야 한다. 자칫 매년 2%씩 늘리기로 한 전력소비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 역시 불가피하다.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정부 몫이다. 국민이 납득 못하는 계획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