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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일치로 화합의 정치 ...정적도 “위대한 대통령” 찬사

중앙선데이 2011.03.20 00:58 210호 8면 지면보기
룰라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 있다.(오른쪽 사진) 퇴임 1년을 남겨둔 지난해 1월 북부 바이아주 이네마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연말 휴가를 보낼 때 파파라치한테 찍힌 사진이다. 민소매에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아이스박스를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은 전형적인 브라질 가장의 모습이다. 아이스박스에는 시원한 캔맥주와 음료수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브라질 사람들은 우리 이웃의 친구가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퇴임 때 지지율 87% ‘룰라 리더십’의 비결

룰라는 애초부터 좌우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공산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금속노조 지도자였을 때에는 금속노조를 위해, 노동자당(PT) 지도자였을 때에는 노동자를 위해, 대통령이 돼선 국민을 위해 봉사했던 현실 정치인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만나서 해결하는 것이 룰라식 소통정치다. 여기에는 여야도, 좌우도 없다. 당과 의회 쪽에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면 룰라는 그것을 단순하게 푸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 핵심은 언행일치에 있다. 무늬만 서민대통령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했다. 대통령은 ‘문제 해결사’라고 룰라는 단언해왔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섰던 조제 사르네이 전 대통령과는 임기 말에 개인적으로 친구가 됐다. 사르네이는 말한다. “룰라의 말에는 믿음과 진정성이 있다. 다민족 브라질 사회에서 모든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진정한 대중의 대통령, 위대한 브라질의 대통령”이라고 평했다.

룰라 지지 열기는 빈부격차 개선 덕택
브라질 국민이 룰라에 열광하는 이유를 단 하나만 대라면 나는 주저 없이 빈부격차의 개선을 들겠다. 룰라 재임 기간에 빈곤층의 25%가 중산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야말로 룰라의 열광 팬이다. 룰라는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는 세계화 속에서 사회통합을 이루면서 빈곤 문제를 해소해왔다.

룰라 정부의 성장비결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페르난두 카르도주 정부(1995~2002년)의 경제정책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룰라가 단순히 정책만 이어받았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현실에 맞는 처방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르도주는 목표물가제, 변동환율제, 기초수지 흑자라는 3대 경제정책을 펼쳤지만 1999년 금융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러나 룰라 시절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음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누가 언제 어떠한 정치적 결단력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룰라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볼사 파밀리아(빈민층 가족지원금) 프로그램도 원래 카르도주 정부에서 시작됐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룰라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예방 주사를 맞아야만 지원금을 주었고, 이것 또한 아빠 대신 엄마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맞춤형 분배정책은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빈민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하기 때문에 저소득층 지원금은 소비 확대 효과를 낳는다는 게 룰라의 생각이었다.

권재창출, 지우마는 룰라의 완결편
룰라는 또 행정관료였던 지우마 호세프를 후계자로 점지해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노동자당(PT)의 유력한 잠룡들이 부패 문제 등으로 모두 낙마하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카드라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룰라는 지우마의 됨됨이와 업무 능력, 정치력 등을 지켜보다 2005년 정무장관(총리 격)으로 발탁해 다양한 테스트와 훈련 코스를 거친 뒤 PT의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우마는 룰라의 완결편이다. 룰라 시대에 복잡한 정치적 장애 때문에 미뤄놓은 미완의 개혁과제를 풀어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룰라는 앞으로 어떤 정치 행보를 보일까. 85년 민주화 이후 브라질에선 5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했다. 조제 사르네이(브라질민주운동당·85∼90년), 페르난두 콜로르(브라질노동당·90∼92년), 이타마르 프랑쿠(사회민중당·92∼95년), 페르난두 카르도주(브라질사민당), 그리고 룰라다. 퇴임 후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브라질의 전직 대통령들은 왕성한 정치 참여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중 사르네이, 콜로르, 프랑쿠는 모두 현직 상원의원이다. 사회학자 출신인 카르도주만이 정계와 거리를 두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흥미롭다. 브라질 유력 방송인 글로보가 지난 2월 전직 대통령들과 연쇄 인터뷰를 했을 때 나온 말들이다. 사르네이는 “정치란 들어가는 문만 있지 나가는 문은 없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문이다”라며 자신의 정치활동을 옹호했다. 콜로르와 프랑쿠는 ‘당에서 강력히 요구했기에 정계에 복귀했다’고 대답했다. 반면 카르도주는 정계복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상원의원만 12년을 했고 외무부 장관, 재무부 장관, 대통령까지 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은 정치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사르네이는 요즘 지우마 정부가 집권 첫해에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방 상원 의장인 사르네이는 상원에 정치개혁위원회를 구성한 주역이다. 콜로르·프랑쿠도 상원의원 자격으로 정치개혁위원회에 초대받았다. 브라질의 정치개혁은 이미 90년대 중반 카르도주 정부 시절부터 추진됐으나 지지부진했다. 97년 대통령 연임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만 성사시켰을 뿐이다.

룰라는 현재 민간재단 설립에 힘을 쏟고 있다. 브라질의 민주주의 경험을 다른 나라에 전수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 상황에 따라서는 2014년 대선에 컴백할 수 있는 정치거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지지하는 사르네이 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들어가는 문만 있지 나가는 문이 없는 것이 정치”라고. 과연 룰라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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