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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초상화 DNA

중앙선데이 2011.03.20 00:40 210호 2면 지면보기
17일 저녁 미술 공부를 하는 자리에 초대되어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엉망진창인데 과연 개선 가능성이 있는가, 있다면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성낙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은 그 근거를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꺼내들었습니다.“조선시대 초상화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승정원 일기』를 보면 ‘한 털 한 오라기 머리카락일지언정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다른 사람이 되니, 결코 바꾸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는 대목이 있어요.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화가 과장되고 왜곡되는 측면이 있었다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려야 했었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병이 걸렸으면 걸린 대로, 장애가 있으면 있는 대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사진)에서는 오른쪽 눈썹 위에 육종이 보이고, 숙종·영조 때 오명항이란 분의 초상화에서는 간암 말기 증상인 흑달과 두창의 상흔이 뚜렷하다고 이 총장은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사실 그대로라는 원칙을 충실히 지킨 풍조야말로 지금 우리가 역사에서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이 총장은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날 한 가지를 더 깨달았습니다. 피부에 전문 지식을 가진 의사 선생님이 초상화 그림 공부를 할 때, 일반 평론가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점을 지적할 수 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완해주는 세상, 진정한 융합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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