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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최고로 만든 건 외모 아닌 땀방울

중앙선데이 2011.03.20 00:38 210호 2면 지면보기
볼레는 대리석으로 빚은 듯한 얼굴에 완벽한 인체 비율로도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를 배경으로 한 볼레의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실비 기엠, 줄리 켄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등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초청 파트너 영순위로 꼽는 그다.
볼레를 만나기 위해 지난 설 연휴 때 밀라노로 날아갔다. 2월 6일과 8일 라스칼라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레 ‘마농’을 관람했다. 마농 역의 올레시아 노비코바와 호흡을 맞춘 볼레는 완벽한 몸동작과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관객의 뜨거운 환호에 그는 열 번의 커튼콜로 화답했다. 이튿날인 9일 오전 라스칼라 극장 2층 접견실. 볼레가 연습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전날 저녁 공연이 밤 11시 무렵 끝났는데도 그는 이날 오전 10시 연습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희생’과 ‘연습’이었다.

‘신이 내린 발레리노’ 이탈리아 라스칼라의 로베르토 볼레


1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볼레.
-많은 사람이 당신을 이탈리아와 라스칼라 극장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스칼라 정도의 큰 극장이라면 전 세계에 극장을 대표할 수 있는 스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라스칼라를 대표하고 예술과 역사의 나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무용수가 됐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부심을 갖는 것은 제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발레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2 폴리나 세묘노바와 카르멘을 연기하는 볼레.
-2004년에는 라스칼라 발레단의 에투알로 선정됐는데요.
“에투알은 수석 무용수 이상의 인정을 받습니다. 에투알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관객을 대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무용수만 에투알로 선정되기 때문에 에투알은 최고의 타이틀인 동시에 무용수로서 인생에 길이 남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레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누가 언제 발견했나요.
“제가 일곱 살 때 부모님께 발레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순전히 저의 생각이었고 저의 열정이었죠.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이탈리아 최고의 발레 학교에 보내주셨어요. 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선생님들께서 저의 재능을 찾아주셨어요. 그 후 고된 훈련에 들어갔죠. 학교에서는 기초를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열여덟 살부터는 발레단에 입단해 전문 무용수로 무대에 서게 되기 때문이죠. 열여덟 살까지는 최고의 무용수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항상 최고 수준의 공연을 선보이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도 기계가 아닌 사람인지라 항상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매일 혼신의 힘을 쏟아 7~8시간씩 연습해 실력을 최대한으로 올려 놓습니다. 하지만 정작 무대에 올라가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 저는 라스칼라 발레단 외에도 여러 나라 최고의 발레단과도 공연하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항상 우선순위에만 집중해야 하니까요. 공연과 연습에 집중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건강식을 챙겨 먹고, 밤에 클럽에 가서 춤추지 않고 다음 날 공연과 리허설을 위해 일찍 자는 등 철저하게 스스로를 관리해야 합니다. 시합을 준비하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물론 친구들이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만의 인생을 즐기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발레와 저만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무용은 저의 열정이고, 저의 삶이고, 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이겠죠.”

-힘들 때는 없었나요.
“스물두 살 때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한 ‘백조의 호수’에서 지크프리트 왕자 역을 처음으로 맡았어요. 하지만 주역은 뭔가 달랐고 달라야 했어요. 준비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무대에 올라가는 게 두렵다는 생각조차 들었죠. 공연하는 횟수가 쌓일수록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처음에는 항상 어렵습니다.”

-발레리노로서 롤 모델은.
“루돌프 누레예프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저의 롤 모델이었어요. 역사상 단연 최고의 무용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남다른 무용수들이죠. 누레예프는 발레의 주연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꿨어요. 열정적인 사람이었죠. 바리시니코프가 출연한 영화 ‘백야’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라 할 수 있죠.” (영화 출연 제의를 적잖게 받는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발레를 통해 대중에게 공헌할 수 있는 좋은 시나리오라면 언제든 출연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영화 ‘블랙 스완’을 고사한 이유에 대해서는 “리얼 발레 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발레리나는 정신적·육체적·심리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라스칼라 발레단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클래식 발레단입니다. ‘백조의 호수’나 ‘돈키호테’ 같은 작품을 주로 올리죠.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케네스 맥밀란, 지리 킬리안, 존 노이마이어, 월리엄 포사이스 등 다양한 안무가의 작품 또한 끊임없이 공연했습니다. 이런 작업은 발레단만의 고유한 레퍼토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안무가로 지리 킬리안과 존 노이마이어을 꼽았는데.
“지리 킬리안의 작품은 동작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무용 그 이상인 것 같아요. 시 같다고 할까? 인간적으로도 참 괜찮은 사람이고요. 존 노이마이어는 매우 똑똑하고 명석합니다. 모든 스텝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안무를 짜죠. 연습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죠. 그의 스텝 하나하나에 사상이 깃들여 있어요. 발레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존 노이마이어는 오늘날 서사적 발레 안무가로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어요"

-다양한 파트너와 호흡을 맞췄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너는.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파트너와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죠. 첫 ‘호두까기 인형’의 파트너는 다르시 부셀(Darcey Bussell)이었고, 그 외에 알레산드라 페리(Alessandra Ferri), 스베틀라나 자하로바(Svetlana Zahcharova), 루치아 라카라(Luccia Racara), 줄리 켄트(Julie Kent)와도 함께 공연했죠. 이렇게 훌륭한 발레리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인 공연을 하게 됩니다. 상대 발레리나 내면의 감정이 제게 전달되고 제 감정 또한 전해주면서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게 되죠. 그러다 보면 서로 보다 높은 수준의 안무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술은 해독제,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대부분 발레의 주요 테마는 사랑입니다. 발레는 사랑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매개체인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죠.
“발레가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매체인 이유는 관객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마농’ 같은 공연을 보면 관객도 사랑·고통·죽음·질투 같은 감정에 빠져들게 되죠. 음악과 스토리, 발레 동작이 합쳐지면 관객은 작품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본인의 재능과 아름다움은 어떻게 유지하나요.
“건강과 아름다움은 우리가 받은 선물입니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바로 세우고, 좋은 음식을 먹는 등 자신을 가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지게 될 테니까요. 재능도 우리가 받은 선물이지만 매일 갈고 닦아야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곧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발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정 브랜드를 공개적으로 추천하신 적도 있는데요.
“공연장 밖에서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도 하고 여러 브랜드를 추천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TV를 통해 페라가모나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 사람들이 제가 발레리노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발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광장이나 대성당 혹은 나폴리 같은 곳에서도 유명 연예인처럼 수천 명의 대중과 큰 이벤트를 연 적도 있어요. 이런 이벤트는 발레 문화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죠. 하지만 가능한 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는 대중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많은 사람이 발레를 알게 되고 이들이 앞으로 발레 공연의 관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탈리아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유니세프 활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된 지 벌써 11년이 지났네요. 친선대사로서 빈곤 국가에 두 번 방문한 경험이 있어요. 2006년 수단 남부 지역을 다녀왔는데, 정말 힘든 여정이었어요. 아이들은 사방에서 도움의 손길을 원하고 있었죠. 빈곤 외에 아무것도 없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정말 큰 충격이었죠.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가치관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본 후가 중요합니다. 그런 절박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하죠. 지난해 11월 두 번째로 중앙아프리카에 다녀온 뒤에는 구호기금 마련을 위해 로마에서 갈라 공연을 했어요. 빈곤 국가를 돕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 일과는.
“보통 오전 8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8시30분에 극장에 도착해 워밍업을 합니다. 10시부터 1시간15분간 수업을 하고 11시30분에 2시간 동안 리허설을 합니다. 1시간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 3시간 동안 다시 리허설을 합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리허설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사지를 받거나 수영을 하거나 반신욕을 해서 몸을 풀어줍니다. 간혹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하죠. 40세 미만으로 구성된 웹 경제 포럼의 젊은 세계 리더로도 활동하고 있어 회의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다음 시즌 작품은.
“라스칼라 극장에서는 ‘주얼스 앤드 다이아몬드(Jewels and Diamond)’라는 작품을 할 예정입니다. 이 공연 후에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지젤’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카멜리아 레이디’를 올릴 계획입니다. 9월 즈음에는 함부르크에서 존 노이마이어와 함께 ‘카멜리아 레이디’를 2~3개월간 공연할 생각입니다.”

볼레와 헤어지면서 한국 무대에서는 언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본과 중국에서는 공연을 해봤지만 한국을 아직 가보지 못했다며 초청을 하면 언제든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볼레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술은 강력한 해독제다”. 볼레는 발레를 말할 때 이 말을 자주 쓰곤 했다. 그는 발레와 같은 문화예술이 이 어지러운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치유하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발레를 삶의 전부로 여기는 한편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이유도 “예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리라.

로베르토 볼레의 ‘신이 내린 몸매’ 분석
* 1m90㎝의 큰 키:
고전 발레에서 남자 무용수는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키가 작으면 주역을 맡는 것이 불가능하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1m73㎝)같은 키 큰 발레리나를 들어올릴 때는 공중에 떠 있는 발레리나와 이를 받쳐 주는 발레리노 사이에 반작용의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 상반신의 미세한 근육선:
근육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 내면 연기를 할 때 팔과 어깨 그리고 등과 가슴선의 근육들은 미세하게 꿈틀댄다. 미세하기 때문에 더욱 강력해 보이는 근육은 ‘파드되(Pas de Deux)’
에서 파트너 발레리나를 돋보이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조명을 받으면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 공중 도약:
볼레의 공중도약인 ‘그랑 주테(grand jete)’ 동작은 선천적 라인과 후천적 근육이 만들어 낸 움직임이다.타고난 유연성으로 만들어 내는 일자 라인은 모든 발레리노의 선망의 대상. 탄력적 리듬을 만들어 내는 엉덩이 근육과 군살 없이 매끈하면서 곧게 뻗은 허벅지 근육은 중력에 저항하는 점프를 용이하게 해 준다.

* 까치발:
수천만 번 포엥트(발끝 포인트)를 해서 만들어 낸 환상의 발끝 라인. 볼레의 발레 미학은 그의 발이 빚어내는 곡선에서 시작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황금비례가 완벽하게 적용된 몸과 조각 같은 얼굴. 여기에 볼레는 30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평균 7시간의 연습을 더해 왔다.

로베르토 볼레
여섯 살 때 재미 삼아 발레를 시작했다.열한 살에 이탈리아 라스칼라 발레학교 장학생이 되면서 발레는 그의 모든 것이 됐다.열여덟 살에 라스칼라 발레단에 입단,스물한 살에 수석 무용수가 됐다.현재 밀라노 라스칼라 발레단의 에투알일 뿐만 아니라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와 일본 도쿄 발레단에서 동시에 수석 무용수로 활약 중이다. 볼쇼이·마린스키·파리 오페라·런던 로열 오페라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객원 수석 무용수이기도 하다.이탈리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선희씨는 세종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무용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심리학 박사. 현재 한국발레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sunny@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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