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일 잇는 마음의 끈

중앙선데이 2011.03.20 00:21 210호 17면 지면보기
이상하게 만나면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대가 있다. 비슷한 길을 가는 라이벌인 경우도 있고,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에 전혀 다른 인생행로를 가는 대상일 수도 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마뜩잖은 감정은 개인 차원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지역 간 갈등과 반목, 보수와 진보의 긴장 등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 구성원끼리 과격한 감정반응이 오고 가면서 상황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인접해 있거나 침략의 역사가 있는 국가끼리도 그렇다.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와 영국, 한국과 일본 등이 그 예다. 운동경기도 ‘숙적끼리의 대결’이라 표현하고 정치경제적으로도 첨예하게 경쟁한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 학파나 대상관계이론이라면 형제간 갈등 같은 가족 내 역동의 연장으로 보지만, 카를 융은 인간 무의식에 깊이 저장된 콤플렉스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때 콤플렉스는 상대에 대한 열등감뿐만 아니라 자만심·경멸 등 다양한 감정반응과 기억·행동·지각 등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감정적인 패턴과 성향 등을 의미한다.

한국과 일본은 집단무의식과 의식상황 양쪽에서 불편한 점이 많아 콤플렉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정신대, 원폭피해, 징용자, 마루타 생체 실험과 같은 과거 기억에서 독도 문제까지 마주 보고 냉정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예민한 문제가 많다. 그러나 우리의 일본 콤플렉스가 심하면, 배울 게 많은 일본인의 풍요로운 문화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일본인들 역시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극우적 입장만 고집하면,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로부터 좋은 점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워낙 경제적 격차가 커서 우리에게 일본은 그저 넘지 못할 벽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자연 한·일 대화 역시 완전히 동등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을 뛰어넘는 기업이나 개인도 적지 않고, 일본에 부는 한류열풍으로 한국을 선망하고 동경하는 일본인도 많아졌다. 한국의 젊은이 역시 식민시대의 아픔에 발목 잡히기보다는 다양하고 독특한 일본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과거처럼 문화를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우월하다고 강변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상대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이 해소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일본인은 그들의 전통가극 ‘노’의 배우들처럼 웬만하면 속(혼네)을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극도로 조심한다. 받은 만큼 꼭 갚아야 된다고 믿기도 한다. 거대한 재난이지만, 작은 희망만 있어도 말없이 차근차근 벽돌을 쌓으며 언젠가는 마음의 빚을 되돌려 줄 사람들이다.

대재난을 겪고 있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그동안 양국의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를 치유해줄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19세기 우키요에의 대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란 그림에 나오는 쓰나미는 공포스럽기보다는 작가의 탐미주의적 태도가 그대로 전해질 만큼 아름답다. 검은 쓰나미와 원전의 피해가 어느덧 걷어질 때쯤에는 한국과 일본의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도 가나가와의 코발트 빛 파도처럼 청량하게 변모할 수 있길 기원해 본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