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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파우스트’, 16~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하지만 걱정은 일순간이었다. 오페라는 목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가창은 관록의 품격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매순간 매력 넘치는 연기를 구사했다. 69세 나이에 보여준 열정과 노련함은 최고 가수의 자세와 실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4막의 ‘세레나데’는 압권이었다.
팬들의 많은 관심을 끈 것은 파우스트역의 김우경이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성악가 중 가장 괄목할 활동을 보이며, 세계 메이저 극장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테너다. 그는 기름기를 절제한 청랑한 창법에서 나오는 자신만만한 고음과 유려한 테크닉으로 세계적 수준의 테너임을 입증하였다.
소프라노 알렉시아 불가리두는 두터운 질감의 음성으로 기품 있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마르그리트역으로 완전히 몰입한 그녀, 외모는 가련했고 열연은 처절했다. 이상 세 주역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이미 칭찬받아 마땅했지만, 국립오페라단의 욕심과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역에 해당하는 가수들까지도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세계적 일류 무대의 필수 조건이다. 시에벨의 이동규, 발랭탱의 이상민, 마르트의 정수연 등이 그들인데, 각자 역할에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파우스트’를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인 요소는 연출이었다. 이소영 예술감독이 연출한 이번 프로덕션은 연출, 무대미술, 조명 등 모든 시각적 요소가 제대로 완성되고 나아가서 상호간 유기적으로 녹아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의상의 통일성이 부족하였고 발푸르기스 장면의 구태의연함이 다소 섭섭했지만, 국내에서 이만큼의 제대로 된 미장센을 본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특히 1막에서 무대 뒤를 넓게 이용한 숲의 정경은 초장부터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3막 ‘투레의 노래’부터 마르그리트가 펼친 연기는 신선하였으며, 5막 피날레는 눈과 귀가 모두 아찔하기까지 하였다.
국내 공연에서 조마조마하지 않고 마음껏 감동에 몸을 맡기며 본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이소영 감독의 취임 이후 2년 동안 국립오페라단이 그렇게 쏟아 부었던 거름들이 이번 ‘파우스트’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마치 마르그리트의 집에서 활짝 꽃을 피웠던 나무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