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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렌쇼, 20달러 퍼터로 1000만 달러 상금

중앙선데이 2011.03.20 00:14 210호 20면 지면보기
골프 클럽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30년 보비 존스의 그랜드슬램을 도왔던 퍼터 ‘칼라미티 제인’이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전설적인 여성 총잡이 마사 제인 버크의 별명 칼라미티 제인을 퍼터에 갖다 붙였다. 총잡이 제인은 상대를 재앙(calamity)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그런 애칭을 갖게 됐는데, 존스는 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의 퍼터, 그러니까 굴리면 들어간다는 뜻으로 이 이름을 썼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4> 날렵한 일(一)자형 윌슨 8802

칼라미티 제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든 퍼터가 윌슨 8802(사진)다. 칼라미티 제인처럼 블레이드(칼날이란 뜻으로 一자형 퍼터를 지칭)인데 훨씬 미끈하게 빠졌다. 이 퍼터로 진 사라센과 아널드 파머가 투어를 휩쓸었다. 그러나 블레이드 퍼터는 어렵다. 치기 쉬운 핑의 앤서 퍼터가 나오면서 일자형 퍼터는 역사의 뒤편으로 밀리는 듯했다. 벤 크렌쇼(59)가 아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크렌쇼는 일곱 살 때부터 명교습가 하비 페닉이 만들어준 조악한 블레이드로 공을 굴리면서 놀았다. 핑 앤서의 인기가 뜨거웠지만 그는 블레이드 퍼터를 버리지 않았다. 크렌쇼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전통주의자였다. 그는 페닉의 프로숍에서 윌슨 8802를 들고 웨글을 해보고는 “나에게 완벽하게 맞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퍼터 값으로 20달러를 지불했다. 크랜쇼는 블레이드 퍼터로 PGA 투어와 챔피언스 투어에서 상금으로만 약 1000만 달러를 벌었다.

벤 크렌쇼는 “퍼팅이 잘되는 날엔 그린과 몸이 일치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홀컵 속 흙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감각적인 선수였다. 다른 퍼터를 썼더라도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윌슨 8802에 대한 강한 신뢰가 아니었다면 역사상 퍼트를 가장 잘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젠틀 벤’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퍼터를 ‘리틀 벤’이라고 부르면서 애지중지했다.

필 미켈슨도 이 퍼터를 썼다. 97년 2500만 달러를 받고 요넥스 모자와 용품을 쓰기로 했을 때 퍼터만은 윌슨 8802를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현재 그는 캘러웨이 용품을 쓰고 있는데 윌슨 8802와 유사한 퍼터를 캘러웨이에서 만들어 주고 있다.

블레이드는 1, 2번 아이언 같은 클럽이다. 잘 쳤을 때 손맛은 끝내주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낭패를 본다. 정직한 롱아이언은 우드나 하이브리드로 대체됐다. 그러나 블레이드 퍼터는 남아 있다. 요즘 인기가 더욱 커지고 있다. 명품을 표방하는 클럽 장인들은 블레이드 퍼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골프 매니어 중에는 실제 쓰지는 않더라도 미끈한 블레이드 퍼터를 한두 개씩 가진 사람이 많다. 기능의 시대는 가고 디자인과 스타일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멋쟁이들이 블레이드 퍼터를 애용했다. 진 사라센은 스타일이 가장 뛰어난 선수였고, 아널드 파머는 섹스 심벌이었다. 필 미켈슨도 여성팬이 많다. 골프는 섹슈얼리티가 강하다. 코스를 정복하는 것이다. 특히 홀인 할 때가 클라이막스다. 미끈하게 빠진 블레이드 퍼터를 쓴다면 흥분은 더욱 클 것이다. 헤드가 뭉툭하고 못생긴 반달형 말렛 퍼터와는 비교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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