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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는 집안에 있다, 네 가족을 사랑하라

중앙선데이 2011.03.20 00:11 210호 22면 지면보기
모진 고문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무려 한 달 반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둘째는 소식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밤마다 아내는 불안과 공포로 내몰렸다. “여보, 혹시 우리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버린 것 아닐까?” “혹시 마약에라도 손을 대서 경찰에 잡혀간 거 아니야?” 그 착하고 착한 아이가 연락을 끊을 일이 무엇인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삶과 믿음

전화기에 대고 호통도 쳤다. “야, 이놈의 자식아. 너 아빠·엄마 말려 죽일 작정을 했어. 왜 연락이 없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졸업 했어? 못했어?”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만 갔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소리였다.

‘자식이 속을 썩이는 건 부모더러 변화하라는 시위다’. 부모 세미나 때 부모들에게 한 소리다. 그때마다 도를 닦아야 한다고도 했다. 도(道) 중의 도가 “내비도(‘내버려 둬’라는 뜻)”다. 그런데 그 내비도가 정작 가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성경에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기실 ‘네 가족을 사랑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원수는 집안에 있으니까.

나중에야 아들 녀석이 잠수(?)를 탔던 이유를 알아냈다. 학점 관리를 못해 ‘길게 길게’ 공부를 하기로 했단다. 드디어 우리 집안에도 ‘장∼학생’이 탄생했다. 장학생(長學生)말이다. 아이는 용서를 구했다.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앙금은 나를 괴롭혔다.
수능시험이 끝난 날, 평소에 하던 대로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행복퐁당_‘산산이 부서진 언어영역이여/찾아도 답이 없는 수리영역이여/풀다가 내가 지칠 사탐·과탐이여/시험지에 남아 있는 문제 하나는/끝끝내 마저 찍지 못하였구나…/시계바늘은 10분 전에 걸리었다/못 마친 이들은 슬피 운다/떨리는 수성 싸인펜은 답지 위에 정답의 이름을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정답을 부르다 목 쉰 그대. 그대에게 ‘재수(財數-再修)’(?)를 명하노라.

뜻밖에도 글에 반응을 보인 것은 트친(트위터 친구)들이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아닌 아들 녀석이었다. e-메일로 답글을 보내왔다.

‘점점 느려진 졸업 날짜여/신청해도 모자란 학점이여/쓰다가도 모를 리포트여/시계바늘은 새벽을 가리켜도/…난 집에도 가지 못하고/졸업 못한 나는 슬피 울었지만/가족에 기대어 다시 일어나려 하네.(ㅋㅋㅋ 수능이군요)’

이번에는 내가 울었다. 비로소 아들의 마음이 가슴 진하게 다가왔다. 애비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진로 지도나 학비 지원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용서였다. 깨끗이 용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용서의 수혜자는 아들이 아닌 나였다. 아들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긍휼의 마음이 생겼다. 긍휼을 일러 ‘하나님의 최상의 이름’이라 한 이유를 알 듯했다. 그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장(heart)’을 얻게 된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울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난 안다. 내 기도가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가족부터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기도하기 위해 손을 모은다. 늘 막혔던 기도가 오늘 따라 수월하게 나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비로소 그 분의 심장(Heart) 속에서 그 분의(He)의 예술(art)을 본다. 아 용서!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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