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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위협 받는 ‘日 경제 심장’ 원전 수습하면 재건 효과 기대

중앙선데이 2011.03.20 00:08 210호 24면 지면보기
“가장 고전적인 불확실성이다.”
세계적인 금융통화 이론가인 찰스 굿하트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의 말이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사태가 그렇다고 한다. 그는 16일 인디펜던트지와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핵재앙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인디펜던트 기자가 “무슨 말인가”라고 묻자 굿하트는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일본 경제 시나리오


“후쿠시마 사태는 겉보기엔 방사능 유출이란 측면에서 미국 스리마일이나 소련의 체르노빌 사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구와 산업시설의 밀집지역을 위협하는 핵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결과를 예측하기 너무 힘들다. 후쿠시마 사태를 가장 고전적인 불확실성이라고 한 이유다.”

후쿠시마 원전은 일본 최대 경제권(게이힌 공업지대)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240㎞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게이힌 공업지대엔 일본인 3500만 명이 모여 산다. 전체 인구의 30% 정도다. 지난해 게이힌 공업지대의 총생산(GRDP)은 1조5000억 달러다. 일본 GDP의 28%를 차지한다. 지난해 한국 GDP는 98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세계적인 금융그룹 미쓰비시UFJ와 일본 정보기술(IT)의 상징인 소니 등의 본사가 도쿄 지역에 몰려 있다.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51곳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상황이 다급하고 심각할수록 결과는 극단적인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어떻게 리스크를 대비하고 분산해왔는가를 추적한 리스크의 저자인 고(故) 피터 번스타인이 생전에 즐겨 했던 말이다. 번스타인 말대로라면 후쿠시마 사태의 시나리오는 두 가지이지 않을까. 극적 해결이나 경제 재앙이다.

시나리오 1=원전 사태를 수습할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19일 외부 전력선 연결에 성공했다.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면 일본 경제 상황은 자연재해의 일반적인 궤적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스위스계 금융그룹인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지 매그너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방사능 사태만 해결되면 일본 경제는 단기적으로 후퇴하겠지만 1~3년 뒤엔 가파르게 성장하는 V자형 회복을 보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은 원전 상황을 제외한 채 지진과 관련한 피해 규모와 경제적 여파를 추정해 내놓았다. 영국 바클레이스 등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낳을 피해를 빼면 “사망과 실종을 뺀 지진 쓰나미의 피해 규모는 1995년 고베 대지진보다 적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고베 대지진 피해 규모는 1200억 달러였다. 지진 쓰나미로 올해 일본의 GDP는 1% 정도인 1500억 달러(171조원)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본 경제는 올해 0%나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란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애초 올해 일본 성장률은 1.2% 정도로 예상됐다.

일본 정부의 재건 작업이 본격화하면 경제는 활기를 띨 수 있다. 매그너스는 “재건 작업의 효과는 6~12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며 “2012년 일본 성장률은 2~3%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와 IT 업체들은 일본의 기술집약적 부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7일 전했다. 하지만 복구가 진행되면서 미국이나 유럽· 한국 기업들의 부품난도 단기에 그칠 전망이다.

단 “후쿠시마 원전 등 지진 피해 지역 발전소가 신속하게 전기를 다시 생산하지 못하면 일본 수도권의 산업생산이 쉽게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경제 전문가인 아서 알렉산더 미 조지타운대 교수가 16일 미 피스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동일본 대지진은 ‘도쿄 컨센서스(경제정책 견해일치)’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80년대 일본은행(BOJ) 경제분석가로 활동한 바 있는 리하르트 베르너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지난주 영국 더타임스와 인터뷰에서 “BOJ와 재무부는 양적 완화 등 경제정책을 놓고 대립해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데 한몫했다”며 “지진·쓰나미를 계기로 그들이 컨센서스를 이뤄 공격적으로 돈을 찍어내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를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엔화 가치가 지진 직후 강세를 보였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돼 있던 일본 자금이 복구를 위해 일본으로 환류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장의 투기세력이 붙은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18일 긴급 전화회의를 열고 엔화 안정에 나서기로 했다. G7 중앙은행들이 나서 그날 하루에만 2조 엔(250억 달러)을 시장에 쏟아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엔화 가치는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공조하고 BOJ가 양적 완화를 파상적으로 실시하면 엔화 가치는 조만간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 2=원전 사태가 악화될 경우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을 막지 못하면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경제 재앙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방사선 누출 규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본 최대인 게이힌 공업지대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그룹 웰스파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콧 앤더슨은 17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가 발생한 2003년 홍콩의 모습을 떠올리면 방사능이 덮친 이후 일본이 어떤 모습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거의 모든 홍콩 사람이 집에 칩거하다시피 했다. 외부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바람에 생산과 소비가 급격히 위축됐다. 그해 홍콩 성장률은 -3%였다. 미국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홍콩 성장률은 -2.8%였다.

그런데 “방사능 확산은 사스보다 더 심각하게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18일 보도한 내용이다. 사람들이 방사능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바이러스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경험은 또 다른 파장을 시사한다. 두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수요가 사고 직후 급감해 농업 자체가 붕괴했다.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스리마일 지역에서 운행된 자동차들이 지금까지 미 중고차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방사능 공포가 소비자들의 구매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조짐은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한국 등이 일본산 농산물 등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강화했다. 여차하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태세다. 방사능 사태가 심각해지면 전 세계 소비자들은 일본산 농산물뿐 아니라 전자제품이나 자동차까지 외면할 수 있다. 일본 경제의 최대 동력인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3위인 일본 경제가 사실상 작동 중단되면 그 파장은 미국과 유럽·중국·한국 등으로 확산된다. 일본의 기술집약적 부품과 생산설비는 쉽게, 그리고 빨리 대체하기 힘들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기업의 생산과 설비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해외에 투자된 일본 자금도 환류해 글로벌 자금시장이 요동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도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of Economic Policy)가 왜곡되는 탓이다. 복구와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돈을 찍어내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하르트 베르너 교수는 “생산과 소비, 수출이 위축되고 경제 주체들의 예상이 예전과 달라져 금리나 통화량을 움직인다고 일반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 인플레이션과 엔화 가치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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