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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력 ‘수치심 문화’

중앙선데이 2011.03.19 23:53 210호 35면 지면보기
존 브레이스웨이트(John Braithwaite)는 호주의 저명한 범죄학자다. 이른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을 주장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용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죄인일망정 포용하고 감싸 안아 사회로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범죄 억제를 위해선 형사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청소년 선도에 자주 등장하는 ‘다이버전(Diversion)’ 역시 이러한 ‘회복적 사법’ 개념을 활용한 정책이다. 죄지은 청소년을 무작정 소년원이나 교정시설로 보내 소년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지 말고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등으로 대신해 우리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살아갈 기회를 한번 더 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브레이스웨이트의 ‘회복적 사법’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불법행위를 한 미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자국의 경찰에게 붙잡혔을 때 반응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미국인은 대뜸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며 눈을 부릅뜨며 경찰관에게 따지는 데 비해, 일본인은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브레이스웨이트가 더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일본의 경우 어떤 잘못은 누군가 혼자 했는데, 그에 대한 사과는 여럿이 집단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면 부모가 사과하고, 청소년이 다니는 학교 교장이 사과하고, 동네 사람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등 집단적으로 책임을 떠안으려 하는 점을 그는 매우 특이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수치심(shame) 문화가 일본 사회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자기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공동의 잘못으로 인식하니까 아무래도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삼가게 되고 설사 죄를 짓더라도 사회는 사과와 용서로 그를 감싸 안아 사회 복귀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차이는 범죄 발생 결과로도 나타난다. 범죄통계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되는 살인율을 놓고 볼 때 2009년 미국의 살인 발생 비율은 인구 10만 명당 4.96건이나 된다. 이에 반해 일본은 0.85건에 불과했다. 인종 갈등이나 빈부 격차, 총기 소지 허용 등 정치·사회적으로 다른 변수들도 있지만 살인이 아닌 다른 범죄 역시 큰 격차를 나타낸다. 한마디로 일본의 치안상태가 미국보다 훨씬 좋다는 게 정설이다. 범죄율과 함께 눈여겨봐야 하는 사실은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에 범죄자를 가두는 수감률의 차이다. 미국의 수감률은 일본의 20배가 넘는다. 미국에선 여차하면 범죄자들을 교도소로 보내는 엄벌주의 방식이다. 마치 컨베이어벨트에서 제품을 조립하듯 기계적으로 수형자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미국 교도소에선 지난 20여 년간 수감인원이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정부 교도소마다 수형자가 넘쳐나게 되자 최근에는 민영 교도소까지 크게 늘어나는 현실이다.

지금 일본 사회는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누출 사고까지 세 가지 재앙이 한꺼번에 겹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난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놀랄 만큼 차분하게 법규와 질서를 지키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흔히 봐왔던 약탈이나 강도·난동 같은 무정부 상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전 세계는 그런 일본을 주시하고 있다. 브레이스웨이트가 강조한 대로 일본 특유의 수치심의 문화, 개인보다는 조직을 강조하는 문화가 극한 상황에서도 범죄억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 조직의 평형상태인 화(和)를 깨뜨리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일본이 가진 저력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이창무 연세대 정외과 졸업 뒤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형사사법학(Criminal Justice)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패러독스 범죄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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