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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중앙선데이 2011.03.19 23:42 210호 33면 지면보기
“잃어버린 20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회적 자본’ 저수지는 마르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일본은 이번 재난으로 죽지 않을 것이며 더 강해진 모습으로 재기할 것이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국민이 보여준 침착한 행동과 양보·배려의 정신에 지구촌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대재해가 휩쓴 나라들에서 으레 나타났던 무질서와 약탈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일본의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용어를 활용했다.

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동심을 발휘하게 만드는 사회 규범이나 가치를 말한다. 그 연구는 1970년대 초 시작돼 90년대에 집대성됐다. 왜 어떤 나라는 선진국이 되고 다른 나라는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열쇠로 부각되면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 나라가 경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법과 제도, 인적·물적 자본으로만 부족하며 사회적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나라가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기업 조직도 번성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로버트 푸트남 하버드대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서도 사회적 자본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자발적 정치 참여와 국정 감시를 촉진한다는 설명이었다. 진정한 사회적 자본을 키우려면 교육과 훈련만으론 부족하며 국민 스스로 깨달아 문화와 전통으로 뿌리내려야 한다는 게 이들 학자의 공통된 견해다.

지금 일본 국민은 ‘우리가 왜 선진국인가’를 몸으로 처절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들의 태도와 행동은 분명 일본의 희망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20년이 남긴 상처일까. 일본의 사회적 자본의 한쪽에 균열이 노출됐다. 바로 정부와 사회 지도층의 리더십 문제다. 정부 관료와 원전 폭발의 책임자인 도쿄전력 경영진은 갈팡질팡, 무능력과 책임회피성 행동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한쪽엔 구호물자가 잔뜩 쌓여 있는데, 정작 피해 주민들은 배고픔과 목마름, 추위에 고통받고 있다. 일본 국민의 인내도 한계에 달한 모양이다. 도쿄를 중심으로 정부를 성토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이 이번 대지진의 물질적 피해는 물론 사회적 자본까지 복원한다면 분명 전화위복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비롯해 각종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특유의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요즘엔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 일각에서 시작된 제몫 챙기기와 갈등 조장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겉으론 사랑과 화해를 얘기하면서 뒤로는 특권의식과 독선을 설파하기 일쑤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수쿠크(이슬람 채권) 반대와 타 종교에 대한 폄하가 대표적인 예다. 정치권은 중심을 잃고 표 계산뿐이다. 리더십이 제대로 서지 않고선 한국형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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