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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싫어 시작한 육상 … 레이 유리, 올림픽서 금 10개

중앙선데이 2011.03.19 23:38 210호 32면 지면보기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던 미국인 레이 유리는 인간 승리를 일궈냈다. 1900, 1904, 1908년 올림픽 육상 제자리뛰기 부문에서 8개 금메달을 땄고 1906년 중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를 따냈다. 그의 기록은 이후 100년간 깨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가장 많이 딴 선수는? 정답은 수영선수 펠프스다. 금메달 12개.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 100년 동안 이 질문의 주인공은 레이 유리(Ray C. Ewry)였다.

권기균의 과학과 문화 소아마비를 이긴 사람들

1900년, 1904년, 1908년 올림픽 육상 3종목 3회 연속 석권으로 금메달 8개를 땄고 190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중간올림픽 금메달 2개를 추가해 모두 10개의 금메달을 딴 것이다. 종목은 육상의 제자리높이뛰기·제자리멀리뛰기·제자리세단뛰기(1908년 폐지). 그래서 그의 별명은 ‘인간 개구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이는 장애인이었다. 그는 일곱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서 있는 자세에서 껑충 뛰어오르는 일뿐이었다. 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휠체어에서 떨어져 있고 싶어서 점프를 계속했다.”
만약 1908년에도 제자리세단뛰기가 올림픽 종목으로 계속 남아 있었고 나머지 두 종목도 그 다음까지 계속 존재했다면 레이의 기록은 아직까지도 깰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미국의 흑인 여자 선수 한 사람이 단거리 육상 종목을 휩쓸었다. 여자 육상 100m, 200m, 그리고 400m 릴레이에서 3관왕을 차지한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다. 그녀는 네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가 한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그래서 11살 때까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재활치료를 통해 육상선수가 됐고 올림픽에서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땄다. 윌마 루돌프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은 다시 걸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믿었다.”

소아마비는 매우 전염력이 강한 폴리오바이러스(poliovirus)에 감염돼 발병한다. 바이러스가 뇌와 척수의 걷는 데 관련된 근육의 신경세포를 공격한다. 이 신경세포가 파괴되면 마비가 온다. 감염자 200명 중 1명이 장애인이 된다.

에이즈가 나타나기 전까지 소아마비는 20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질병이었다. 미국에서만 매년 5만8000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다. 뉴욕의 일간지에서 ‘오늘의 소아마비 환자 발생 수’를 매일 보도할 정도였다.

조너스 소크(Jonas Salk)가 1952년 3월 26일 백신을 개발했다. 원숭이의 신장 세포에서 배양한 바이러스를 포르말린으로 죽여서 만들었는데, 주사방식이다. 이때 소크는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 1호로 삼았다. 공개 실험접종 3년 만인 55년 4월 12일 미국 정부가 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했다.

이어 앨버트 사빈이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했다. 이것은 경구용 생백신, 즉 먹는 백신이다. 이 먹는 백신이 효과는 더 우수한데, 생백신이다 보니 아주 드물게 백신 때문에 소아마비가 발병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소아마비가 유행하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주사용 백신만 사용한다.

1988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아마비 근절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120개국 이상에서 유행하던 소아마비 발병률이 99% 이상 감소했다. 현재는 대부분이 인도·나이지리아·파키스탄에서 발병하는데, 전체의 76%가 나이지리아다.

우리나라도 50년대까지 매년 200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6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도 예방접종이 실시되면서 한 해 200명 정도로 줄다가 84년부터는 환자 발생이 없어졌다. WHO는 94년 서유럽에서, 2000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 근절을 공식 선언했다.

WHO는 해마다 7조원 정도를 소아마비 근절 사업에 투입한다. 그중 미국이 매년 1조6000억원(14억 달러)을 후원하고,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 앤드 멀린다 재단’도 지금까지 약 3500억원을 기부했다. 국제로터리클럽도 ‘폴리오 플러스(Polio Plus)-소아마비박멸운동’으로 후원하고 있다.

2002년부터 5년간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소아마비 백신 발견 50주년 기념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에서는 환자의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소아마비, 그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미국 사회 안에서 일으킨 변화 등을 보여주었다.

소아마비는 의학적 이슈에서 사회적 이슈로 발전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 문제들이 제기됐고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건물 설계, 출입문 설계 등도 바뀌기 시작했다. 장애인 돕기, 백신 개발을 위한 모금운동도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스미스소니언 전시에는 38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좌절하다가 휠체어 대통령이 되어 미국을 전쟁과 경제위기에서 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소아마비 모금운동을 위해 트럼펫 연주를 하는 루이 암스트롱, 백신 주사를 맞는 엘비스 프레슬리 사진 등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그리고 퇴직한 과학자와 함께 아이들이 바이러스의 특성 등을 알아보고, 직접 소아마비 백신 개발 실험을 하는 핸즈온(Hands-On) 센터가 전시실 바로 옆에 있었다. 전시와 연계된 과학실험을 하는 것인데, 우리도 박물관 전시를 할 때 벤치마킹해볼 만하다.



권기균 공학박사. 미국 국립스미스소니언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회의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사)과학관과 문화 대표로서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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