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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구로다 후쿠미 “누가 울면 같이 울어주는 이가 정 많은 한국인들이죠”

중앙일보 2011.03.19 03:07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일본에 한류(韓流) 소개 26년 … 일본 인기배우 구로다 후쿠미





일본의 인기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54). 아직 미혼인 그녀는 스스럼없이 “한국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26년째 한국을 일본에 소개해온 ‘한류(韓流) 전도 1세대’다. 그녀의 한국 사랑은 남다르다. 한류 스타 사인을 받기 위해 집 앞에서 밤을 새우는 그런 게 아니다.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의 지방 곳곳을 더 많이 여행했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일본에 널리 알려왔다.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구로다 후쿠미와 함께 가는 한국 여행’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본인을 위한 관광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 여배우,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봤다.



그녀는 꽤 유창한 한국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네요(일본에선 그녀가 귀화한 한국계 일본인이란 헛소문까지 나돌아 홈페이지에 이를 해명하는 글까지 올렸을 정도다).



 “1984년 일본 NHK 방송이 처음 TV와 라디오에서 한글 강좌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어 공부를 독학으로 했어요. 한·일 월드컵(2002년)을 앞두고 2001년 한국에 살면서 서강대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고요. 가장 높은 등급으로 입학해 3개월 만에 끝냈어요.”



●왜 한국어를 배웠나요.



 “지금은 많은 일본인이 한류, 한류 하지만 84년까지만 해도 일본에선 한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남북문제 때문에 일본 언론, 특히 TV에서 한국 관련 보도가 거의 없었거든요. 민영방송들은 한국에 관한 것은 요리, 여행, 문화 같은 것들도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자칫 시청자가 광고주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면 안 되니까요. NHK의 한글 강좌 이름도 한국어나 조선어가 아닌 ‘안녕하십니까. 한글 강좌’였어요. (친한, 친북이란)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요. 그러다 보니 일본 사회에선 과거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도 생길 수 없었지요. 게다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도 남아 있어서 많은 한국인이 고생을 하고 있었지요. 저는 우리 일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한글 교육 강좌가 생긴 것을 계기로 일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한국어를 알아야 했지요.”



●한국에 왜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지금의 많은 일본인이 한국 배우 배용준씨를 통해 한류에 관심을 갖게 됐듯 80년대에 본 한국 배구선수 강만수씨의 플레이에 매료된 게 계기였어요. 그러나 저는 단순히 한국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 전에 한국에 대해 여러 교육을 받아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 문제로 접근했어요.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종종 ‘조선이 식민지였을 때 일본에 끌려온 한국인이 매우 힘들게 살아서 가여웠다’고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우리 일본인이 과거에 그런 일을 했구나’라고 생각했지요. 고등학교 때는 일본사 선생님이 과거 조선인 강제연행이나 간토(關東) 대지진 때 벌어진 일(일본인이 조선인을 살해한 사건들)을 설명해줬어요.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인데, 프린트를 만들어 배포하고는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 재일 한국인 차별 문제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었어요.”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이었나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과거 일본인이 잘못한 일을 지금도 되풀이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 사회의 동반자로서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소박하게 말하면 화가 났어요.”



●생각하신 것을 실천하는데, 한국어가 도움이 됐나요.



 “85년부터 한국에 대한 언론의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서울 올림픽(88년)이 다가오는데 더 이상 이웃 나라를 모른 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을 알리는 기획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 일본에선 교수나 평론가밖에는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배우로서 한국어를 좀 알고, 84년 말에 한국에도 갔다 왔고,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도 있던 제가 주목을 받았어요. 85년에는 일본 프로듀서협회가 한국 영화감독 배창호씨와 배우 안성기씨를 초청한 파티에서 제가 한국어로 연설한 것을 계기로 한국통 여배우로 눈길을 끌기 시작했지요. 85년 간사이(關西)TV의 아침 와이드쇼에서 처음 한국을 소개하는 리포터를 맡았죠. 이후 88년 올림픽 때까지 ‘구로다 후쿠미의 한국 로드’(후지TV의 한국 소개 정기 프로그램) 등 많은 방송국의 한국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담당했어요. 당시 일본 여자가 미숙해도 한국어로 말하려고 하자 많은 일본인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87~88년 신문에 소개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 관련 프로그램이 하루 3개씩 나올 정도로 많아졌어요. 그때가 1차 한류 시기였던 것 같아요.”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총리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인사하는 구로다(위 사진). 지난해 10월 ‘구로다 후쿠미와 같이 가는 한국여행’ 프로그램 진행 당시 관광열차 해랑호 앞에 선 구로다. 40여 명의 일본인이 참가했으며, 열차 한 량을 통째로 빌렸다.



●일본인이 한국을 찾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요.



 “90년대 초 일본에서 거품이 꺼지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그 전에 일본인은 돈이 많으니까, 비싸고 먼 나라를 갔어요. 그런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까우면서도 안전하고 매력 있는 나라를 찾기 시작했지요.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94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서울의 달인(達人)』이란 획기적 관광책자를 만들어 발간했어요.”



●어떤 책이었는데요.



 “그 전까지 한국관광공사 등이 만든 서울 관광책자는 서울의 대표적 지역인 이태원, 명동, 신촌 정도만 소개하고 있었어요. 음식도 불고기 등 대표 상품뿐이었고요. 그런데 외국인인 저의 눈으로 보면 서울에는 더 많은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있더라고요. 일반적 관광 가이드북은 서울의 관광공사에 가면 공짜로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에 실리지 않은 것을 책으로 소개하자고 생각했어요. 남대문 등 대표적 시장 이외에 경동시장이나 수산물 시장에 가 직접 생선을 사서 회와 찌개를 먹는 방법, 한증막, 시계골목, 웨딩드레스, 안경시장 등을 처음 소개했어요. 관광공사 사람들은 그런 곳이 관광상품이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서울의 달인』은 2002년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되기도 했지요.”



●한국 어디 어디를 다니셨나요.



 “지난 25년 동안 수없이 한국을 방문했어요. 한 달에 두 번 간 적도 있어요. 그런데 2002년까지는 서울을 집중적으로 소개했어요. 한국의 문화는 모두 서울에 모여 있기 때문에 서울을 잘 소개해야 일본인이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2002년 이후에는 서울도 도쿄와 비슷해지고, 일본인이 충분히 서울에 가고 있으니 지방을 소개하고 싶어졌어요. 일본인은 부산, 경주는 알고 있지만 다른 지방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알아야 한국지방의 매력을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 2002년 이후에는 한국에 갈 때마다 전국을 돌기 시작했어요. 2~3일 서울에 머문 후 경상도, 전라도 등 여러 지역을 찾아가는 방식이었어요. 대구에서 경주, 포항을 거쳐 울릉도에 갔다가 묵호에서 태백산, 봉화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어요. 갈 때는 사전 취재를 하고 카메라맨, 코디네이터 등 5~6명이 팀을 구성해 갔어요. 울릉도에선 오징어잡이 배도 탔어요. 한국을 일주하는 관광열차 해랑호를 타고 다닌 적도 있어요. 아마 제가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의 지방에 대해 더 많이 알 걸요. 지난해 9월에는 일본인이 해랑호를 타는 ‘구로다 후쿠미와 같이 가는 한국 여행’이란 프로그램도 만들었어요. 열차 한 량을 모두 빌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어요. 40명 정도 탄 것 같아요.”



●여행한 곳의 내용은 어떻게 일본에 소개했나요.



 “일본에서 일본어로 한국을 소개하는 ‘숟가락’이란 잡지가 2006년 재일 한국인에 의해 창간됐어요. 그때 6회 정도 ‘한국 구르구르(구석구석)’란 제호 아래 제가 다닌 한국의 지방들을 소개했어요. 사정이 생겨 더 이상 못 썼지만, 그 잡지는 지금도 발행돼요. 취재를 하기 위해 제 돈도 많이 썼어요. 어떤 때는 제가 배우라기보다는 기자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에 관한 책도 많이 쓰셨는데요.



 “10권 넘게 썼어요. 88년에는 한국으로 인해 나의 인생이 바뀌게 된 내용을 담은 자서전 『서울 마이 하트(My Heart)』를 썼는데, 96년 한국어판이 출판됐어요. 96년 한신(阪神)대지진이 났을 때는 재일 한국인이 많이 사는 피해 지역에서 한국인이 분투하는 모습을 전국에 전달하고 싶어 유명한 일본 사진작가와 함께 사진집을 펴내기도 했어요. 2001년 서강대에서 유학할 때는 아사히(朝日)신문이 창간한 잡지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는데, 2003년 고단샤(講談社)에서 『이웃한 한국인 경향과 대책』이란 책으로 발간했어요. 2007년에는 도쿄대의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와 대담한 내용이 책으로 나왔고요.”



●왜 한국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열심입니까.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처음 갔던 84년에는 매우 가난한 배우였어요. 일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그때 한·일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 드라마 등에서 3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하면서 이제는 연예계의 톱클래스에 올랐지만, 돈을 벌기보다는 한·일 간 가교 역할을 위해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자 의무인 것 같아요. 가족은 ‘왜 시집도 안 가고 그런 일을 하느냐’며 걱정해요.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나의 인생에서 이것을 빼고는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한류가 유행하면서 ‘나도 구로다상과 같이 되자’는 사람이 많아져 보람을 느껴요.”



●한류가 왜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두 나라 모두 아시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차이점이 매력 포인트가 돼요. 일본은 섬나라여서 폐쇄적인 데다 이성적인 마음과 불교의 영향이 강해 말하지 않는 문화예요. 그러나 한국은 대륙 국가여서 자기 표현력이 강하고 정(情)이 많은 문화예요. 내가 울고 있으면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한국인이고, 일본인은 차분하게 진정하라고 말을 하지요. 그런데 일본인도 역시 외로울 때가 많기 때문에 따뜻하게 말해주는 것을 좋아하지요. 일본인이 감명받는 것은 한국인의 정인 것 같아요. 한류가 유행하자 다음에는 화류(華流·중국 문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 일본인도 있었지만, 나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중국 문화는 처세술과 성공을 중시하는 문화여서 한류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지요.”













j 칵테일 >> 태평양 전쟁 끌려간 한국인 위해 비석도 세워



구로다 후쿠미는 지난해 10월부터 포항시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등 한국과 일본의 교류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때 만들어진 ‘한국 방문 환영(welcome to Korea) 시민 협의회’의 일본 측 홍보위원(1999), 2002년 한·일 월드컵 일본 측 조직위원회 이사(1999),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2007), 도쿄 일·한 교류 축제 실행위원(2007) 등도 지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제2회 대한민국한류산업대상(2010년 12월), 한·일문화대상(2007년, 사회공헌 부문)을 수상했고, 2007~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주일 한국대사·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과거사 반성도 실천에 옮겨 2009년에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으로 참전해 숨진 한국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 근교의 한 절에 ‘귀향 기원비’를 세웠다.



>> “한국인이 못 보는 한국, 나는 볼 수 있어요”



구로다 후쿠미의 가장 큰 소망은 한국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배우로서 가장 소중했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엉뚱하게 “없다”며 “그것보다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한국의 달인(達人)』 책이 가장 소중했고, 지금부터는 ‘한국 구르구르(구석구석)’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죽기 전 나의 소망”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곧바로 한국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한국의 다양한 문화, 역사, 먹을거리, 볼거리, 체험거리, 즐길거리를 깊이 있게 담을 생각”이라며 “한국인에게는 안 보이는 것을 외국인인 나는 볼 수 있기 때문에 꼭 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 일본 방송은 세 달간 13회 방송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계속할 수도 있다”며 “일본에서 먼저 방송한 후 세계 각국에서 방송하면 한국으로선 재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획안을 만들어 스폰서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오대영 가천의대 교양학부 교수,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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