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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임경택씨, 북미 최고 권위 ‘메트 콩쿠르’ 우승

중앙일보 2011.03.19 00:40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미국서 처음엔 주눅들었지만 노래로 뒤지지 않으려 노력했죠”





지난 13일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제58회 ‘메트 콩쿠르’ 최종 결승에서 ‘조셉 임’이라는 이름이 불려졌다. 한인 바리톤 임경택(28)씨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출전한 1500여 명과의 경쟁을 뚫고 우승하는 순간이었다. 경택씨는 1차에선 ‘피가로의 결혼’ 제3막 중 알마비바 백작의 아리아 ‘벌써 이긴 셈이다’를, 2차에선 ‘이고르 왕자’ 중 이고르의 아리아를 극적인 음색과 세련된 매너로 불렀다. 뉴욕 타임스의 비평가 앤서니 토마시니는 “다소 작은 스케일이지만 백작의 아리아를 우아하게 불렀고, 이고르의 아리아에선 열정과 깊이를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경택씨는 USC 손턴 음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2008년 팜스프링스 오페라 길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메릴린혼 성악콩쿠르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데뷔작은 2008년 서울시오페라단의 ‘돈 조반니’에서의 타이틀 롤이다.



 경택씨는 4월 거주지를 LA에서 시카고로 옮긴다. 시카고 릴릭 오페라의 레지던트 아티스트로 합류해 2011~2012 시즌 ‘호프만의 이야기’ ‘보리스 고두노프’ ‘코지 판 투테’에 출연할 예정이다.





●우승 소감은.



 “북미 최고 권위의 오디션에서 우승한 것이 너무나 기쁘다. 특히 메트 오페라 무대에서 메트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콩쿠르에서 바리톤 경쟁이 특히 치열했는데.



 “맞다. 유독 이번 오디션엔 바리톤, 베이스 등 저음 가수가 많았다. 그래도 최대한 남들 신경쓰지 않고 내 노래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남성 결선 진출자들이 턱시도에 보타이 차림인데 혼자 다르다.



 “본래 메트 측에서 결선에서 검은 타이와 턱시도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난 항상 연주 때 차이나 칼라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어왔다. 메트 측에서도 옷을 보고 ‘좋다’고 했다.”



●결선 진출자 8명 중 유일한 아시아계였다. 부담은 없었나.



 “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성악가의 고민이 아닐까 한다. 어디서든 나 혼자 튀기 마련이니까. 처음 미국에 왔을 땐 주눅드는 경우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결국 피부색·머리색보다는 노래로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이번 오디션에서도 나머지 7명의 참가자, 그리고 메트 관계자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성악가 가족인 임경택씨(가운데)와 어머니 이영우씨(소프라노)



●음악 가족이다.



 “어머니(이영우씨)와 누나(임수주씨) 모두 성악을 하신다. 아버지 또한 굉장한 클래식 애호가다. 자연스레 어렸을 적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했다. 어머니는 선화예고에서 학생을 가르치시고 누님은 유럽에서 활동 중이다. 이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어머님과 누이의 조언이 있었나.



 “어머니께선 항상 ‘침착하게,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누나와는 음악적으로 각자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말을 아끼게 된다. 누나도 그냥 ‘침착하게 잘하라’는 말을 했다.”



●왜 뉴욕이 아닌 LA로 유학했나.



 “보통 잘 알려진 음대들이 동부 쪽에 몰려 있기 때문에 나도 동부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중 USC도 포함돼 있었다. 서울대에 다닐 때 미국 출신 은사가 강력하게 추천해 준 학교였다. 학교 오디션을 마치고 미국에서 ‘돈 조반니’ DVD를 구입했는데, 주인공이 바로 바리톤 로드 길프리였다.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가수인데 노래며 연기며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고 매력적이었다.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런데 다음 날 USC 성악과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있고, 다음 학기부터 교수로 합류하는 로드 길프리가 지도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 발표가 나기도 전에 USC로 가기로 결정했다.”



●길프리 교수에게 뭘 배웠나.



 “길프리 교수는 내가 미국에 온 이후로 그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준 분이다. 특히 서양인에 비해 소극적인 한국인들의 무대에서의 표현과 디테일에 대해 중점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하고 싶은 역은.



 “가벼운 역할보다는 감정의 선이 깊은 역할을 선호한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돈 카를로’에 나오는 로드리고 역할을 해보고 싶다. 현재는 ‘돈 조반니’의 타이틀 롤이 가장 노래하기도, 연기하기도 편하다.”



●서고 싶은 무대는.



 “특별히 서고 싶은 무대라는 것보다는 어디에서든 내가 노래하면서 즐길 수 있는 무대에 서고 싶다. 아무리 큰 무대고 화려해도 관객과 소통할 수 없다면 내가 즐길 수도, 감동을 줄 수도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작은 무대라 할지라도 관객들과 정말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나도 즐겁고 감동도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콘서트도 할 수 있겠다.



 “어머니, 누나, 외삼촌 이외에 사촌 형(윤정수)도 연세대 성악과 출신의 테너로 영국에서 활동 중이다. 평소 우스갯소리로 가족끼리 나중에 오페라를 하나 꼭 하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만약 가족과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사실 그 어떤 무대보다 훨씬 뜻깊고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글·사진=뉴욕 중앙일보 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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