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신이 도와주고 싶을 때까지 진력하라

중앙일보 2011.03.19 00:35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에우티프론의 딜레마’라는 게 있습니다. 에우티프론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젊은 귀족입니다. 젊은이들을 미혹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소크라테스가 법원에 출두했다 그를 만나지요. 그는 노예에게 벌을 주다 죽게 한 자기 아버지를 고소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라 할지라도 살인죄를 저질렀으면 고소해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신의 뜻에 맞는 처사라는 거지요.



 이처럼 흥미있는 토론 주제를 소크라테스가 그냥 넘어갈 리 없습니다. 자기 코가 석 자이면서 그를 붙들고 논쟁을 벌입니다. 논쟁의 초점은 ‘신의 뜻에 맞는 행동’ 즉 경신(敬神)이 무엇이냐에 모입니다. 여러 사람 열받게 했던 -자신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은- 소크라테스 특유의 말꼬리 잡기 식 ‘송곳 질문’이 이 불행한 젊은이에게도 퍼부어지지요. 에우티프론은 곧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행위가 선하기 때문에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의 뜻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 행위가 선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 그는 슬그머니 달아나고 맙니다.



 이웃나라 일본을 삼킨 대재앙을 두고 망령되이 ‘신의 뜻’ 운운하는 사람들에게서 에우티프론의 뒷모습을 봅니다. 이번 지진해일이 “미신을 믿는 일본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설교하는 종교 지도자도 있고, “일본에선 지진 나고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데 한반도는 안전하게 지켜주는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정치 지도자도 있습니다.



 설교의 효과를 높이려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리라 믿습니다.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본 사람에게 상처 줄까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일본인들을 신이 유별나게 미워한다고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그토록 엄청난 피해가 우리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란 말을 강조한 것뿐일 겁니다. 이처럼 경솔한 우리를 신이 특별히 편애할 이유를 아무리 따져봐도 찾지 못하겠으니까요. 그 신이 하나님인지 하느님인지 구분하는 건 여기서 의미가 없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달은 것만으로도 삶에서 겸허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찾았으니까요.



 흔히 사람들은 겸허하지 못할 때 신에게 기댑니다. “신의 뜻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겸허하지 못한 주장이나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말입니다. 중세 기독교의 마녀사냥도,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오늘날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자살테러도 모두 신의 이름으로 자행됐습니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말했지요.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는 속죄양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이 신의 섭리다.”



 하늘을 떠난 신의 섭리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구부러지고 색깔이 덧입혀집니다. 조지 버나드 쇼는 비꼬아서 한 얘기지만, 성경을 성경 문구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자신이 읽고 싶고 듣고 싶은 얘기를, 읽고 듣는 거지요.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면 -남에게 강요하는 구원이 아니라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불경이나 코란 역시 마찬가질 겁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은 한때 평신도들에게 아예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성경 보급을 금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자의적 해석을 막는다는 명분이었지만, 자신들만이 신의 뜻에 대한 배타적 해석권을 갖는다는 오만이 부른 난센스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뜻을 올바로 판단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소크라테스가 에우티프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합니다. 무엇이 신의 뜻인지는 결국 행위의 주체인 인간의 판단이라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신이 모든 것을 초월한 지고(至高)의 존재인 만큼,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지혜와 지성을 통해 최상의 수준에서 그 판단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그 말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그 뜻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함부로 신의 뜻을 들먹이지 말라는 거지요.



 마침 마감날 받은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네요. 그것을 결론으로 삼아도 좋을 듯합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일본항공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말입니다.



 “그 후로 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라. 그러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반드시 신이 손을 내밀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