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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이게 사는 거니? 또다른 나로 변한 바퀴벌레가 혀를 쯧쯧쯧

중앙일보 2011.03.19 00:23 종합 27면 지면보기








그 녀석 덕분에

이경혜 지음

바람의아이들

204쪽, 9000원




고3 수험생 장양호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를 마감하고 집에 들어선다. 그런데 자신과 똑같은 장양호가 들어와 있다. 복제인간, 혹은 쌍둥이처럼 닮은 그 녀석은 누가 진짜 아들인지를 테스트하는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진짜 장양호를 이기고 진짜 아들로 등극한다. 모의고사 수학 점수를 더 정확하게 기억한 것이다.



 진짜 장양호는 내쫓긴다. 가짜 장양호, 그 녀석은 바퀴벌레의 변신체였다.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옛 이야기처럼, 바퀴도 인간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복제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바퀴벌레 녀석은 장양호보다 더 장양호답게 산다. 짝사랑하던 희진에게 사랑을 고백해 사귀고, 학원에 등록할 돈으로 드럼을 배운다. 녀석은 이렇게 말한다.



 “며칠 지내 보니 이건 정말 사는 게 아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사는 것같이 살아야지, 이게 뭐냐? 이건 죽지 못해 사는 거지.”(124쪽)



 드럼에 미쳤던 양호는 고교에 입학하면서 드럼은 물론이요, 드럼이 등장하는 록음악도 싹 끊었다. 그러나 녀석에게 이끌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 공연에 가게 된 양호의 심장은 달아오른다. 뜨거운 드럼 비트 앞에서.



 “이것이었다. 내가 사랑했으나 버렸던 것, 그러나 내 속에서 이렇게 웅크리고 있던 것. (…)나는 죽은 채로 살았다. 3년의 시간 동안 시체처럼, 허수아비처럼, 꼭두각시처럼, 그림자처럼 살았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지금 내가 살아났기 때문이다.”(156쪽)



 나보다 더 나답게 사는 바퀴를 지켜보는 주인공의 실존적 고민은 다소 코믹하지만 장자의 호접몽, 카프카의 소설 ‘변신’ 못지 않게 묵직하다. 작가는 실존, 정체성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10대의 눈높이에 맞게 던진다.



 소설집엔 중편 분량의 표제작 ‘그 녀석 덕분에’ 외에도 단편 3편이 실렸다. 하나같이 10대가 앓고 넘어가는 문제를 정확히 담아낸 이야기들이다. 본격적인 ‘중학생 소설’의 장을 열었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이경혜 작가가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집이다. 7년이 흐르는 동안 작품 속 아이들도 성장했다.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는 고교생들에게 추천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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