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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연락 끊겨 초조해하던 내 친구 야마무라 … 그 애타는 마음을 알기에 …

중앙일보 2011.03.19 00:17 종합 4면 지면보기



정이현 작가가 일본인에게 부치는 편지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11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일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함께 있었다. 일본 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드리자 “지진이야 워낙 자주 있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겁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상적이고도 담담한 태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지진의 여파가 이토록 길고 참혹하게 이어질 줄 아무도 몰랐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일본인들이 휴대전화를 붙들고 연방 통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국으로 거는 전화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듯했고 조금씩 정적과 불안의 기색이 짙어졌다. TV 속보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망연자실해하던 그들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무라가 연방 초조해했다. 어린아이 두 명과 아내가 고향에 있다고 했다. 아까부터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나는 오래전부터 약속된 문학 행사 때문에 도쿄로 떠나야 했다. 도쿄에서 만난 어떤 이가 만약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냥 여기 쭉 머무르라, 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때 내 안에서 뜨거운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아니 그렇다면 더더욱 나는 서울로 돌아가고야 말 거라고.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내 고국이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폐쇄됐다는 공항이 다음 날 아침 정상화되기를 고대하던, 무너진 고향 땅으로 앞뒤 안 가리고 들어가고 싶어하던 일본인 친구들의 애타는 심정에 뼈저리게 공감한 이유는 나 역시 평범한 한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의 사랑하는 식구이기 때문이리라.



 그 소박한 마음과 마음의 공감, 그것이 바로 보편적 인류애라는 커다란 이름의 본질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평화로운 듯 보이던 이 세계의 땅바닥이 실은 얼마나 아슬아슬한 유리로 만들어졌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은 무력하게 그들의 불행을 바라보지만 언젠가는 다른 재해 앞에 맨몸으로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타인의 불행에 대해 진심으로 연민하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인류애의 이름으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내 어깨를 도닥여준 손을 기억하고 남의 손을 잡아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모두는 결국에는 더 단단해진다. 이 혼란의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 작품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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