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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대일 콤플렉스와 반일 감정

중앙일보 2011.03.19 00:05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석구
뉴욕중앙일보 부회장




한국 언론은 요즘 온통 일본 지진 관련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지진 참상을 전하고 일본 돕기 운동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일본인들의 질서의식, 침착함, 인내심 등 일본을 칭찬하는 기사와 칼럼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 보노라니 어리둥절하다. 툭하면 반일감정으로 일본을 비난하던 한국이 변해도 너무 변한 것 같다. 과거사, 종군 위안부, 역사 교육, 독도 등 수많은 문제로 한국과 일본은 앙금이 깊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만 나오면 늘 반일감정은 불타 오르고 언론은 이를 부채질해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한국인들의 마음이 이리 변했을까. 무엇이 일어나면 온통 거기에 매달리는 한국인 특유의 고질적인 쏠림 현상은 아닌가. 세계 각국이 일본의 참상을 애도하고 온정의 손길을 뻗치는 것을 보고 너도 나도 앞다퉈 동참하려는 것은 아닌가. 모처럼 생긴 한·일 간 우호적 분위기에 왜 찬물을 끼얹느냐고 필자에게 돌팔매가 날아올 것 같다. 그러나 과거에 볼 수 없는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가를 나름대로 짚어보고 싶어 이 글을 쓸 뿐 다른 생각은 없다.



 필자는 20년 전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이었다. 당시 닛케이 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다.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칼럼을 쓴 기자는 서울특파원을 지낸 소위 지한파였다. 나는 즉시 중앙일보에 반론 칼럼을 썼다.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지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뒤 나의 뇌리에는 항상 그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한국이 일본보다 잘사는 선진국이 됐더라도 한국의 반일감정은 여전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난 때문이다. 중국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일본의 난징 대학살, 만주사변, 만주괴뢰국 건립 등 많은 악행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한국처럼 일본 일부 인사의 망언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중화사상, 대국의식 등 나름대로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국적 안목으로 일본을 본다.



 이에 반해 한국은 과거 일본보다 문화가 우월했는데 역전됐다. 게다가 식민지까지 됐다. 일제의 식민사관 교육으로 콤플렉스도 은연중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를 자극하는 발언이 일본에서 나오면 이를 못 참는다. 자존심이 상한 때문이다. 독도의 예를 들어보자.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 전쟁을 하기 전에 일본이 다시 뺏을 수는 없다. 한국이 민감하게 반응해 분쟁지역화하면 일본의 의도에 끌려가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정치인이 발언을 하면 무시하거나 독도 주권의 근거를 남기기 위해 조용히 외교적 항의문서를 보내면 된다.



 지금 지진으로 고통을 겪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온정과 애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대일 자신감에서 우리도 모르게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국력 신장, 한류 열풍 등으로 이제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벗어난 때문이다.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할 때 한국과 일본의 국민소득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됐으니 말이다.



이석구 뉴욕중앙일보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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