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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밥상에서 밥맛 나는 한마디

중앙일보 2011.03.15 03:18 15면 지면보기






윤애란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 대표




밥투정 하는 아이와의 전쟁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남매를 둔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 마다 전쟁이 벌어졌단다. 큰 아이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반찬을 골고루 먹이려고 하고 아이는 엄마가 좋다는 반찬은 모두가 맛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더니 마침내 입을 꼭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남편도 가세했다. 아이의 좋지 않은 식습관을 지적하며 혼을 냈다. 밥 먹을 때마다 전쟁이 벌어지는 통에 가족이 함께 오순도순 밥을 먹는 것은 드라마나 책 속에서의 이야기였다.



 ‘반찬을 골고루 먹으면서 한 그릇을 비우면 500원 주기’ ‘밥 잘 먹으면 컴퓨터 30분 더하기’ 등의 유인책을 내걸기도 했다. “맛있게 밥을 먹어야 복이 들어온다.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먹어라. 지구상에는 굶어 죽은 사람이 하루에도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 같은 훈계도 주어졌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아이의 욕구를 자극하는 멘트도 날리고... 날마다 이같이 아이 밥을 먹이려고 온갖 지혜를 짜내며 전쟁을 벌인다.









일러스트=박향미






빗나간 애정표현일지도



어느 날 저녁준비를 하면서 불현듯 어머니 자신이 어린 시절 매일 밥상머리에서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이 났단다. 밥을 남겨서 혼나고, 깨작거린다고 혼나고, 말하면서 밥을 먹는다고 혼나고, 편식한다고 혼나고… 밥상에 앉기가 불안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아이가 자기 어린 시절과 똑같이 밥상에서 ‘고문’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아이 밥 먹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내가 우리 엄마에게 당한 것을 아이에게 한풀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다닐 때 다른 지역으로 전학해 혼자 자취를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뭔지 모르는 불안이 억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이 사라졌다. 집에서와는 달리, 대충 차려 먹는 혼자만의 밥 먹는 시간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고, 밥맛이 너무 좋아서 몸매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자신을 보게 되었다.



 하나라도 더 먹여서 튼튼하게 기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빗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에게 다르게 접근해 보자.” 식사준비를 하면서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부 좀 썰어줄래?” “계란 좀 깨서 저어줄래?” “밥을 네가 먹을 만큼만 담아라.“



 반찬을 먹으면서는 “네가 잘라준 두부라서 그런지 더 맛있네.” “계란을 잘 저어서 부침개 색깔이 곱네.” “다시마의 쌉쌀한 맛과 고추장이 별미네.” 아이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 스스로 모든 반찬에 대해서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맛있는 만큼 말로 표현했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서 식탁에서 일부러 긍정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행복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모두가 웃으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의 밥 먹는 습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 스스로가 아이의 밥 먹는 것에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식구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조금씩 이야기 하게 되었고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



 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해왔던 방법들… 안 먹는다고 구슬리고 혼내기 보다는 이 밥과 반찬이 얼마나 맛있고 기쁨을 주는지 어머니 스스로가 나타내 보일 때 가족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제 신학기가 시작됐다. 어둠을 쫓아내는 법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바늘구멍만큼의 작은 빛이라도 어둠 속에 빛을 비추면 어둠이 물러간다 하지 않는가. 자녀들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부모님들은 시간을 낭비 하지 마라. 게임 하는 시간을 줄여라. 동생과 싸우지 마라.”



 다 필요하고 옳은 이야기지만 대부분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꾸짖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말하기보다는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잘하는 일, 좋은 점을 찾아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면 어떨까? “신발을 반듯하게 놓아서 고맙다. 동생하고 사이 좋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네, 잘했어. 웃는 모습으로 엄마에게 인사를 해줘서 엄마가 기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새 학기를 맞으며 이번에는 문제를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일을 시도해 보자. 훨씬 행복한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윤애란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 대표

일러스트=박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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