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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 지진 않는다” 눈물 닦아주는 일본 야구

중앙일보 2011.03.15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고베’ 땐 오릭스가 리그 첫 우승
큰 피해 입은 지역민에 희망 심어



라쿠텐 선수들 뒤로 ‘동북부 지역에 용기를! 지진에 지지 않는다!’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출처=스포니치]



대재앙도 야구는 흔들지 못했다. 일본은 야구를 통해 재앙을 이겨내려 하고 있다.



 1995년 1월 규모 7.2의 강진이 일본 효고현 고베시를 폐허로 만들었을 때, 당시 연고 프로야구팀 오릭스의 경기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개월 후 오릭스는 유니폼 오른쪽 어깨에 ‘힘내자 고베’라고 써 넣고 보란 듯이 시즌 개막전을 치렀다. 겨우내 훈련도 제대로 못한 오릭스는 퍼시픽리그 6연패를 노리던 세이부를 제치고 창단 첫 우승을 이뤘다. 실의에 빠져 있던 시민들은 승승장구하는 오릭스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일본에서는 14일 대지진 후 처음으로 요미우리-한신의 시범경기가 기후현 기후구장에서 열렸다. 프로축구 J-리그 3월 일정이 전면 취소된 가운데 프로야구는 시범경기가 사흘 만에 재개된 것이다. 모모이 쓰네카즈 요미우리 구단 사장은 “경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프로 선수들이 건강하게 야구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명문팀 간의 대결을 보기 위해 3만 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이날 입장 수익금은 전액 지진 피해 성금으로 전달됐다. 요미우리가 앞장서자 다른 구단들도 시범경기 재개를 검토하고 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센다이에서는 연고팀 라쿠텐으로부터 작은 희망이 움트고 있다. 김병현이 소속된 라쿠텐 구단의 선수들은 홈구장 크리넥스스타디움이 지진 충격으로 파손돼 훈련을 못하게 되자 요미우리가 제공한 가와사키 보조구장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구장 한편에는 ‘동북부 지역에 용기를(東北に勇気を)!지진에 지지 않는다!(地震に負けな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진파와 쓰나미의 침공으로 크게 흔들린 일본이 야구로 중심을 다시 잡으려 하고 있다. 그들은 위기 때마다 언제나 야구를 찾았다.



  야구는 일본의 국기(國技)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의 아픔을 야구로 달랬고, 경제성장기를 즐기며 요미우리(1965~73년 일본시리즈 연속 우승)에 열광했다. 일본인들에게 야구는 놀이가 아니라 일본의 정신이다. 야구 대표팀 별칭도 그래서 ‘사무라이 재팬’이다.



 재일교포 출신인 송재박 두산 코치는 “일본에서 야구는 국기와도 같다. 국민들은 야구를 삶의 일부라 생각하고 선수들은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투철하다. 위기일수록 야구로 뭉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일본야구기구(NPB)는 15일 실행위원회를 열어 25일로 예정된 정규시즌 개막전을 정상적으로 열 것인지를 논의하기로 했다.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시즌이 4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지만 야구단과 선수들은 “그럴수록 야구만큼은 정상적으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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