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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무릎 꿇리기

중앙일보 2011.03.15 00:24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무릎 꿇고 입술을 열어 기도하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 파스칼의 이 유명한 말이 연상되는 어느 기도회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사회자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따라 모두 무릎 꿇고 통성(通聲)기도를 한 일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신자가 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절대자 앞에서는 모두가 가난하고 초라한 영혼으로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마지못해 무릎을 꿇은 것이라면서,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을 반대하는 개신교가 정부의 기를 꺾으려는 ‘신(新) 카노사 굴욕사건’으로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107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로마교황 앞에 무릎을 꿇은 ‘카노사의 굴욕’은 교황이 황제보다 우위라는 교황황제주의(papocaesarismus)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1870년 가리발디에 의해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되었던 바티칸이 1929년 무솔리니와 맺은 라테란 조약으로 독립주권을 회복하게 되자, 교황 피우스 11세는 그 희대(稀代)의 파시스트에게 ‘신의 섭리로 소명(召命)을 받은 사람’이라는 찬사를 바치고 나치의 아우슈비츠 만행에도 눈을 감는다. 타락한 종교권력이 사악한 세속권력 앞에 무릎 꿇은 ‘역(逆) 카노사의 굴욕’쯤 될지 모르겠다.



 이즈음 우리의 제도종교들이 꽤나 거칠어진 것 같아 씁쓸하다. 가톨릭의 어떤 사제들은 4대 강 문제로 추기경에게 막말 비난을 쏟아내 물의를 일으켰고, 템플스테이 예산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던 승려들은 무문관(無門關)을 가르치는 사찰에 ‘특정인 출입금지’의 팻말을 내걸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수쿠크법을 반대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이 대통령 하야를 거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경제적·외교적 국익을 우선시하는 수쿠크법은 과세고권(課稅高權), 조세평등주의, 실질과세의 원칙 등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다만 그 반대가 유독 개신교 쪽에서 크게 터져 나오는 현실은 수쿠크법의 문제 이전에 개신교 자체의 문제를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밀로라드 파비치의 소설 『카자르 사전』은 7∼9세기에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를 지배하다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카자르 제국의 이야기인데, 카자르 군주(君主)의 꿈을 둘러싼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사이의 논쟁과 군주의 개종(改宗)을 계기로 카자르의 종교·언어·민족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는 줄거리다. 군주가 어떤 종교로 개종했는지는 분명치 않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 어느 한 종교가 정치권력화하면 종교나 언어는 물론 국가와 민족마저도 소멸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로 읽힌다.



 오늘의 대중사회에서 제도종교들은 유권자의 표(票)를 결집시키는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세력화한 종교는 비신앙적일 뿐 아니라 헌법의 정교(政敎)분리 원칙에도 어긋난다. 영성(靈性)은 법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사회적 발언이나 행동이 상식을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무릎 꿇고 통성기도를 하든, 고개 숙여 묵상(默想)기도를 하든, 그것은 개인의 종교적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특정 종교의 공개된 행사장에서 국가원수를 무릎 꿇게 하는 것은 비종교인이나 일반 국민에게 ‘권력의 종교편향’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논리가 아니라 정서(情緖)의 문제다. 사회와의 소통에서 종교인들이 보다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대목이다. 그것도 이웃 사랑의 하나다. 동시대인들과 소통하지 못하면서 어찌 영원의 신과 소통할 수 있겠는가?



 파스칼의 말이 아니더라도, ‘무릎 꿇리기’는 권위와 복종의 상징적 의례(儀禮)로서 떨치기 어려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정통의 종교에서만이 아니다. 우상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사탄은 예수마저 무릎 꿇리려 하지 않았던가?(마태 4)



 옷을 찢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유대인들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는 신의 질책을 들었다(요엘 2). 무릎을 꿇기보다 마음을 꿇으라는 뜻이다. “나는 특별한 기도의 자세를 모른다. 앉든지 서든지 무릎을 꿇든지, 아무 지장이 없다.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인도의 성자(聖者) 선다싱(S. Sundarsingh)의 기도론(祈禱論)이다. 그는 말한다. 기도는 무릎이 아니라 마음인 것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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