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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려 애쓰는 시대, 그의 사진은 흐릿함으로 가득하다

중앙일보 2011.03.15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민병헌씨 ‘워터폴’ 사진전



민병헌 작가의 ‘폭포’(2008) 연작 중 하나. 사진평론가 신수진은 “폭포 이상을 상상하게 한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잘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거라면, 그의 사진은 반대다. 무엇보다 시종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대상도 뿌옇고 색깔 역시 희뿌옇다. 아니면 극단의 밝은 톤으로 대상을 지워버린다. ‘회색의 모호함’, 혹은 ‘뿌옇게 부유하는 아련함’이 불러일으키는 서정성과 몰입이 핵심인 작품들이다.



 “사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진을, 관객들은 잘 안 좋아해요. 거의 아무 것도 보여주는 게 없으니까요”라면서 그는 웃었다. 흑백의 미니멀한 풍경사진으로 인기 높은 민병헌(사진)씨 얘기다.











 민씨가 5월7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워터폴(Waterfall)’전을 열고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최근작 ‘폭포’ 시리즈를 중심으로 ‘딥 포그(Deep Fog)’ ‘트리(Tree)’ ‘스노랜드(Snowland)’ 등 70여 점이 전시된다. 얼핏 회고전에 육박할 정도로, 그의 작품들이 총망라됐다.



 민씨는 아날로그 흑백 프린트를 고수하고 있는 소수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 흔한 조수 없이 모든 공정을 혼자서 해낸다. 유난히 빨간 볼도 눈보라 산속 촬영을 하다 걸린 동상의 흔적이란다.



 “디지털 시대, 이제는 필름이나 인화지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어 사진의 위기론도 나오고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손 작업에 매달리게 됩니다. 전통으로의 회귀랄까요.”



 그는 “풍경을 찍지만 유명한 곳을 부러 찾아 다니지는 않는다”고 했다. “같은 장소도 빛과 날씨,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만의 시각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폭포 사진들도 전경을 드러내기보다 물살에 집중해 찍었다. 특유의 절제미와 함께 물살이라는 추상적 형태의 조형성과 물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씨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폭포 사진은 셔터를 길게 눌러 물의 흐름을 과장하거나 셔터를 짧게 끊어 극적으로 고정시킨 것들이었지만, 민병헌의 사진은 중립적인 셔터 스피드로 촬영해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현실적 운동감을 만들어냈다”며 “물줄기 자체를 사진의 온전한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함에 몰입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민씨는 1987년 울퉁불퉁 돌덩이가 박히고 바퀴자국이 패인 거친 땅바닥을 ‘스트레이트’ 하게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잡초’시리즈를 통해 특유의 스타일을 인정받았다. “사진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주변 풍경을 찍다가 사진에 입문했죠. 그래서 처음엔 컴플렉스가 심했어요. 오직 암실안에 있을 때가 최고의 행복이었죠. 한번 암실에 들어가면 인화지 한 박스를 다 쓰고나서야 나오곤 했어요.”



 “앞으로도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그는 “지금은 대형 사이즈 프린트도 하지만, 앞으로는 초기 사진가들처럼 사진을 큰 카메라로 찍고 아주 작은 사이즈로 인화할 생각”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전시엔 빠졌지만 아무것도 없는 하늘만 달랑 찍은 ‘하늘’ 시리즈가 가장 까다로웠지만 개인적인 만족도는 큰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02-418-1315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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