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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법정은 또 한명의 여성을 원한다

중앙일보 2011.03.15 00:14 종합 22면 지면보기






권석천
사회부문 기자




“소수자와 약자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정미(49) 헌법재판관은 14일 취임식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남성들만의 리그’였던 헌법재판소에서 여성 재판관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로써 2006년 전효숙 전 재판관이 퇴임한 지 5년 만에 여성이 헌재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게 됐다. 이제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78)의 지적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역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인 긴즈버그는 2009년 5월 USA투데이와, 7월엔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퇴임으로 여성으로선 혼자서 대법원을 지키고 있던 때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법정은 또 한 명의 여성을 원한다(Court needs another woman)”고 역설했다. 애리조나주의 한 중학교에서 마약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13세 소녀 알몸 수색 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긴즈버그는 공개 변론에서 남성 대법관들이 소녀가 겪게 될 정신적 후유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을 지적했다.



 “열세 살은 여성에겐 매우 민감한 나이죠. 그런데 동료 대법관들은 열세 살 소녀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느꼈던 수치심을 그들이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해 2월 자신이 췌장암 수술을 받은 지 열흘 만에 공개 변론에 참석했다. “대법원에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긴즈버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여성계 요구를 받아들여 여성 대법관을 잇따라 임명했다. 남녀 비율은 ‘6 대 3’으로 바뀌었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10년, 아니 20년 이상의 시차(時差)가 느껴진다. 대법관 14명 중 여성은 1명(전수안 대법관)뿐이다. 지난해 8월 김영란 대법관이 퇴임한 뒤 그 후임에 남성 대법관이 임명됐다. 검찰에선 아직까지 ‘1호 여성 검사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여성 법조인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던 탓이 크다. 하지만 그 뿌리를 보면 한국 사회의 남녀 평등 의식이 그만큼 뒤처져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여성이 대법원과 헌재에서 ‘홍일점’이나 ‘예외적 존재’에 그쳐서는 재판 흐름을 바꾸기 힘들다.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적 갈등을 풀기 위해서도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양보를 끌어내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지금 우리의 법정은 더 많은 여성 대법관·재판관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다.



권석천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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