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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66) 조세피난처

중앙일보 2011.03.15 00:13 경제 18면 지면보기



외국자본 유치 위해 파격적 세제 혜택 … 때로는 탈세의 통로 되기도 하죠





조세피난처(tax haven)가 나라 안팎에서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스위스 프라이빗 뱅킹의 케이맨제도 지점에서 일하던 직원이 고객 정보가 담긴 CD를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넘겨 전 세계 부자들을 떨게 만들었죠. 이런 가운데 인형사업가로 유명한 한 국내 기업인은 해외에 900억원대의 재산을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혐의로 지난달 24일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이래저래 뉴스에 오른 조세피난처에서 최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윤창희 기자



이번에 문제가 된 국내 인형 사업가는 탈세를 위해 조세피난처를 활용했다. 국내와 홍콩의 공장에서 봉제 인형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면서 9년간 총 473억원의 세금을 탈루했다. 그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나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 피난처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로 홍콩 법인이 번 수익을 옮기고, 그중 일부는 스위스 비밀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조세 피난처에 위치한 역외금융센터(Offshore Financial Centers)를 주목하고 있다. 역외금융센터가 각국의 세수 기반을 위축시키는 데다 금융위기 확산을 부추겼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를 적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세피난처의 기준으로는 OECD가 1998년 발표한 판정기준이 흔히 사용된다. 즉 ▶무세율 또는 명목상의 세율 적용 ▶세법 적용상의 투명성 결여 ▶다른 정부 기관과의 정보 공유 제한 등 세 가지 기준이다. 말레이시아·필리핀·코스타리카·파나마·바레인의 경우 한때 블랙리스트(스터디 그룹 지정 국가)에 올랐지만 OECD와 조세 정보 교환을 약속하면서 블랙리스트에서 빠진 국가들이다. 현재 33개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래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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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기준과는 별도로 학계에선 조세피난처를 넓은 의미로 파악한다. 이에 따르면 조세피난처는 크게 네 가지다. 여기에는 영국·이스라엘 등 ‘저세율 국가’도 포함된다.



우선 ‘완전 무세국(tax paradise)’으로 불리는 곳이다. 케이맨제도·바하마·버뮤다 등의 섬이 대부분이다. 소득세·상속세·증여세 등 직접세가 전혀 없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세우는 페이퍼컴퍼니가 집중되는 곳이다. ‘저세율국(low tax haven)’으로 분류되는 지역은 자본과 소득에 대해 낮은 세율로 과세하고, 해외사업소득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세 혜택을 부여하는 지역이다. 마카오나 싱가포르·스위스·자메이카·이스라엘 등이 대표적이다.



홍콩·말레이시아(라부안)·라이베리아 등은 ‘외국소득 면제국(tax shelters)’으로 분류된다. 외국 원천 소득에 대해서는 아예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보통의 국가라면 그 나라 법인의 해외소득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과세하지 않는다. 이 밖에 지주회사 같은 특정 사업활동에 대해 조세 혜택을 주는 나라를 ‘특수사업활동 특혜국(tax resort)’이라고 한다. 영국·캐나다·필리핀·그린랜드·룩셈부르크·아일랜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특정한 분야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곳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고율의 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로 이탈하는 자금의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세원 확보 차원에서다. OECD는 2009년 30여 개의 비협조적인 조세피난처 명단을 발표하는 등 지속적으로 조세피난처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 조세피난처 또는 금융선진국으로 ‘도피하는 자본(capital flight)’이 늘어나 그 규모가 외자유치 규모를 능가한다. 이는 성장 잠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조세피난처로 자본 유출이 늘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은 주로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펀드들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세금을 피하는 수법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이 역외 금융센터를 이용해 절세 하는 수법에도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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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무당국은 조세피난처 국가와의 외환거래에 주목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조세피난처로 분류되는 62개 국가와 한국 간 수출입 실적(통관 기준)은 1382억 달러였다. 전체 수출입 실적의 16% 정도다. 하지만 수출입거래에 수반한 외환거래 규모는 2552억 달러로 전체 수출입 외환거래 규모의 28%에 달했다.



이 같은 차이는 주로 조세피난처 국가에서 수입한 금액보다 그런 나라에 지급한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세피난처로부터 수입한 금액(신고 기준)은 428억 달러에 그쳤다. 그러나 수입대금 지급액은 1317억 달러에 달했다. 비용 부풀리기를 통해 이익을 조세피난처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익명을 원한 관세청 관계자는 “수입신고에 비해 수입대금 지급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조세피난처로 자본유출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며 “무역대금 지급의 적정성 여부를 따져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가별로는 영국(32%), 싱가포르(29%), 홍콩(16%)과 거래한 것이 전체 조세피난처 외환거래의 80%에 가까웠다.



물론 반론도 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중국과의 교역이 늘면서 싱가포르·홍콩 등과의 거래도 늘고 있다”며 “홍콩 등이 특별한 세금 혜택을 주는 저세율 국가이기 때문에 마치 기업들이 탈세를 위해 돈을 빼돌리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세피난처에 대한 직접 투자도 매년 증가 추세다. 이 같은 직접투자의 대부분(89%)은 대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재벌닷컴 집계에 따르면 국내 30대 대기업이 OECD가 지정한 조세피난처 국가에 설립한 국외 계열사는 지난해 4월 기준으로 231개에 달했다. 이는 30대 그룹의 전체 국외 계열사 1831개의 13%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룹당 평균 7~8개 외국 계열사가 조세피난처에 있는 셈이다. 홍콩이 72개로 가장 많고, 싱가포르가 47개, 말레이시아가 39개에 달했다. 특히 동남아 국가가 절반을 넘었다. 또 소득세가 전혀 부과되지 않아 다국적 기업들의 페이퍼컴퍼니가 운집한 버진아일랜드(10개), 케이맨제도(5개), 파나마(5개) 등 면세국에 25개의 계열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흔히 기업들이 외국에 진출할 때 두 가지 형태로 나간다. 지점 형태로 나갈 경우 현지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국내 법인에 귀속되는 것으로 봐 본사 이익과 합산해 과세한다. 반면 자회사 형태로 진출할 경우에는 현지 발생 이익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과세하지 않는다. 단 자회사가 국내 본사에 배당할 경우에만 배당소득세를 부과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런 구조 때문에 대개 현지 세율이 낮은 경우 대부분 자회사의 형태로 외국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삼성은 총 38개의 국외 계열사가 조세피난처로 분류된 지역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대(對)중국 교역 등 정상적인 글로벌 기업활동을 하려고 홍콩 등지에 국외 법인을 뒀다”며 “필리핀의 경우 외국인 토지 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돼 페이퍼컴퍼니 형태로 진출했을 뿐 탈세 등의 의도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는 홍콩에 18개를 비롯해 총 32개 계열사가 조세피난처에 있었다. SK(25개), LG(21개), CJ(19개), 두산(17개)도 조세피난처에 국외 계열사를 두고 있었다.



역외 탈세, 이런 수법으로 한다



역외 탈세를 단속하는 국세청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올해 초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 자산가 등 세법 질서를 저해하는 탈세 거래는 물론 해외 투자 소득을 신고하지 않거나 해외에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역외탈세담당관실을 신설해 관련 정보 수집과 소득 탈루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신고하지 않은 해외 소득 6224억원을 찾아내 3392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올해 1조원을 추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첨단 역외 탈세의 유형을 국세청과 전문가들에게 알아봤다.



1 파트너십



외국인 파트너(투자자)가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 한 거주하고 있는 국가의 과세 당국이 알기 어려운 점을 이용한다. 여러 조세피난처에 다단계로 파트너십을 설립하면 회사(파트너십)와 투자자(파트너) 모두 세금 회피가 용이하다. 불법소득 또는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통로로 이용한다.



2 역외 인터넷 사업



조세피난처에 서버를 두고 인터넷 사업을 하면 납세 대상자가 외국인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음악, 영화 등 디지털 관련 사업에서 흔한 탈세 유형이다. 인터넷 도박은 정부의 규제도 회피할 수 있다.



3 고액 손실거래



해외에 명목 자회사를 설립해 자본금을 투자한 뒤 이 자회사가 투자 또는 거래에서 손실을 본 것처럼 위장해 비자금을 만든다.



4 허위 또는 과다경비 계상



국내 회사가 조세피난처 회사와 거래가 있는 것처럼 위장해 대금을 지급하거나 실제보다 과다하게 대금을 지급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한다.



5 가장 보험



국내 회사가 조세피난처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매년 보험료를 지급해 보험료를 비용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이는 보통의 보험이 아니라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자기보험(Self-Insurance)이다.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위한 수단이다.



6 매출채권 유동화



국내 회사가 조세피난처 회사에 매출채권을 할인 또는 양도하고 팩터링 수수료(Factoring Fee)를 지급한 뒤 비용으로 처리한다. 나중에 조세피난처에서 매출채권을 회수해 개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자금을 은닉한다.



7 신용카드 탈세



조세피난처에 있는 은행이 발행한 가명 신용카드를 국내에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조세피난처에 자금을 은닉한 뒤 국내로 회수하거나 해외에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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