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윤호의 시시각각] 원가공개, 무식해야 통하나

중앙일보 2011.03.15 00:01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윤효
경제선임기자




한 잔에 3000~4000원인 아메리카노 커피, 여기에 들어가는 원두 값은 123원. 관세청이 세전 수입가격을 물량으로 나눠 계산한 결과다. 무심코 사 마시던 소비자들, 이 숫자에 상당히 열 받았을 거다. ‘최고 35배 폭리’라는 감정적인 어림셈엔 혈압도 좀 높아졌을 거다. 지난주 관세청 자료에 대한 언론 보도가 대개 그런 식이었다. 커피 전문점의 커피값에 대한 일제 사격이었다.



 원가라 하면, 일반인들에겐 회계학적 의미와 조금 다른 뉘앙스를 주곤 한다. 직접적인 재료비를 주로 염두에 두고, 이보다 많이 비싸면 폭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번 커피 값 논란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커피 한 잔 만들어 파는 데 원두만 있으면 되나. 원두 값은 재료비의 일부에 불과하다. 또 재료비는 원가의 일부다. 이게 마치 커피 원가의 전부인 것처럼 과대 포장됐다. 폭리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그런 논리라면 도자기 값은 당장 손봐야 하지 않을까. 원재료인 흙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나. 수십만, 수백만원 하는 고급 와인도 갓 딴 포도 값을 따지면 엄청난 거품 아닌가. 자동차는 또 어떤가. 가장 많은 성분이 철이므로 벌크로 들여오는 철광석 기준으로 값을 매겨야 하지 않겠나. 값비싼 신약은 더 그렇다. 분자 합성구조만 알면 큰 돈 안 들이고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의 가격 때리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두 잘못된 논리다.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붙는 갖가지 부가가치와 그에 따른 비용을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물론 관세청의 보도자료엔 분명 ‘원두 원가’ 또는 ‘수입원가’로 돼 있다. 빠져나갈 구멍은 다 만들어 둔 셈이다. 이걸 받아쓰는 기자들이 무식해서 그리 됐다면 할 말이 없다. 낯이 화끈거릴 뿐이다. 이 기회에 단단히 바로잡아야 하겠다.



 그런데 관세청이 갑자기 이런 자료를 낸 이유는 뭘까. 짚이는 데가 있다. 정부의 물가 억제 대책의 하나인 원가 공개다. 정부가 나서서 원가를 밝히고, 그 결과 판매가와 크게 차이가 나면 줄이도록 유도하겠다는 거다. 커피값에 대해 “임대료나 인건비 등을 고려한다 해도 원가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는 관세청의 설명에서 그런 뜻이 잘 보인다. 실제 커피 체인점들은 이를 가격 인하 압박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는 의도와 무지와 감정이 뒤엉켜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 최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중앙일보의 설문조사에선 원가 공개에 찬성하는 답변이 76.3%나 됐다. 이쯤 되면 원가 공개는 강력한 인화성을 지닌다. 언제든지 여론에 불을 댕길 가능성이 있다. 한번 불 붙으면 뒤늦게 ‘그게 아니고’ 하는 설명은 통하지 않는다.



 원래 원가 공개 논란은 지난 정부 때부터 나왔다. 이게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난 상태다. 재차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이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처음엔 정유·유통·통신 등 큼지막한 업종을 건드리다 반발이 커지자 이번엔 일반 소비자를 자극할 만한 커피를 고른 듯하다. 교묘한 외곽 때리기인 셈이다. 오죽 급하면 그랬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해서 커피 값이 떨어지면 소비자들이 조금씩 이익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품목을 그런 식으로 손본다면 뒷감당은 어찌 할 건가.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자’는 구호와 ‘재료비 정도 받아야 한다’는 기대가 공존하는 건 정신분열적이다.



 물가는 한번 오르면 다시 떨어지기 어렵다. 오른 상태로 죽 이어지는 고원(高原)물가가 된다. 투입에서 산출로 이어지는 전반적인 경제활동의 효율이 낮을 때 특히 그렇다. 효율이 떨어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규제가 너무 많거나, 노동생산성이 낮거나, 독점이 생기거나, 중간에 뜯어먹는 자가 많거나…. 우리 경제가 골고루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젠 원가 공개가 이에 가세해 경제의 효율을 더 떨어뜨릴 차례인가.



남윤효 경제선임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